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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가 내리고 어제, 오늘은 정말이지 쾌청한 봄날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날씨에 사무실에만 있기 아까워 잠깐 Refresh한다는 핑계로 나와서 기지개를 켜고 연녹색의 나무와 다양한 색의 철쭉을 만났다.
그것만으로 힐링이 되고 기분이 좋아졌다.

2.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퇴근 후 PT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다며 흡족해하셨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무슨 말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스스로 답답했다. 몸에 익지 않은 것을 알지만 자꾸만 속도를 내고 싶었던 것도 있다.
어쨌든 그런 고비의 순간들을 넘기니 이제는 자세를 알려주면 용어는 몰라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할 때마다 너무 힘들고 억억 소리를 내며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되면 기분이 좋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처음에 운동하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 호흡법을 가장 먼저 알려주셨다. 운동하는데 호흡이 그리 중요한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호흡이 안 되면 운동할 때 다치기 쉽고 운동 효과도 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내 호흡에 문제가 있다 하셨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세요. 자연스럽게 몸에 힘을 빼고 해보세요.”
내 호흡법의 문제점은 결국 몸에 늘 긴장이 있다는 데 있다. 긴장을 풀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장 잘 안된다. 몸이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서 목이며 허리며 근육이 경직되기 쉬운 것이다.
모니터를 오래 보며 일하는데 가끔 바쁠 때는 한 자세로 고정하여 1시간을 넘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책 읽을 때도 마찬가지^^;
요즘은 그것이 얼마나 목이며 허리며 안 좋은 것인지 알게 되어 의도적으로 자주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악력이 없었는데 악력도 좀 생겼고 팔뚝살도 흐느적대지 않는다.

3.
중국어 원서를 조금씩 레벨업해서 읽어가고 있다.
최근 한 드라마를 보았는데 보통 드라마 제작 시 원작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들지만 이 드라마는 반대였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대본이 소설로 나온 경우다.

드라마는 여주가 좋은 일을 하고 우연히 팔찌를 선물 받은 뒤 변신할 수 있는 기능을 소유하게 되면서 온갖 일을 겪는 이야기다.
과연 그녀는 그 팔찌로 좋은 운을 얻게 될까? 마무리가 깔끔했는데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져서 좋았다.

드라마 분량이 32회다. 그동안 원서를 읽어오기는 했지만 아동용이나 청소년용 책을 겨우 읽는 수준이었는데 이런 긴 소설을 어떻게 읽지 싶어 우려스러웠다.
그래도 드라마 원작이 있으니 그걸 믿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 재밌다. 드라마에서 다 담아내지 못하는 전후 과정을 책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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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2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철쭉 보고 철쭉이 벌써 피었네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사월에 피는 거 맞군요 예전에 좀 더 늦게 피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벚꽃은 좀 늦게 피었지만, 다른 꽃은 빨리 피는 것도 같네요

숨쉬기만 잘 해도 괜찮다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운동할 때 숨쉬기 중요하군요 여러 달 해서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군요 앞으로 더 좋아지겠습니다 중국어 원서도 즐겁게 만나세요 드라마도 재미있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5-04-25 08:26   좋아요 1 | URL
작년에는 철쭉이 이보다 훨씬 더 일찍 개화를 시작해서 5월에는 이미 다 졌던 걸로 기억해요. 올해는 그나마 좀 늦어진 것 같고요.

운동을 해보니 자연스런 호흡이 무척 어렵더라구요. 숨쉬는 것이 가장 편안해야 하는데 저는 역행하는 호흡을 하고 있었고 교정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너무 열심히 하려다보니 자연스럽지가 않고 인위적이 되어서 문제가ㅎㅎㅎ 천천히 나아지겠죠^^

날이 정말 좋습니다. 2주 정도 지나면 여름 초입이 될테니 그전까지 봄을 충분히 즐겨봐야겠어요. 희선님도 행복한 일상 보내시길 바랍니다^^*
 

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시칠리아, 사르데냐, 크레타 다음으로 큰 섬이다. 그러나 당시의 전략적 경제적인 가치에서 보면 시칠리아 다음으로 중요한 섬이었다. 리처드는 불과 닷새 만에 이 키프로스 섬을 정복했다. 리처드와 궁지에 몰린 자칭 황제 두카스의 강화를 중개한 이는 병원 기사단 단장이었다. 두카스의 항복은 원만하게 정리되었다.
자칭 황제는 섬 중앙에 있는 니코시아 성으로 물러났고, 키프로스 섬의 영유권과 통치권은 영국 왕에게 귀속되었다. 또한 이후 키프로스는 배상으로 배 50척과 금화 3천5백 닢을, 중근동에서 이슬람 세력과싸우고 있는 그리스도교군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 P87

리처드에 의해, 키프로스는 이제까지처럼 그리스정교파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가톨릭파 그리스도교도측으로 확실히 들어오게된 것이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사회에 이 사실의 중요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훗날 섬의 통치자가 뤼지냥 왕가에 이어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바뀐 뒤에도, 1570년까지 380년 동안 줄곧 키프로스가 가톨릭이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 P88

아코의 전장에 도착한 뒤 한동안 리처드는 선두에 서서 적진 깊숙이쳐들어가는 식의 전투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 지휘계통을 일원화하고그것을 기능하도록 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대의 저널리스트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뉴스를 쫓는 성향이강한 중세 연대기 작가의 글에는 그다지 많은 내용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다른 누구보다 늦게 전장에 도착한 리처드가 실시한 것은 다름아닌 이런 일들이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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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십자군은 프랑스 왕 필리프와 영국 왕 리처드가 이끄는 군대가 중근동에 도착한 1191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하틴‘에서 대패하고 예루살렘마저 탈환당한 1187년의 나머지 반년이 채 지나기 전에티루스를 놓고 벌어진 공방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티루스 공방전이제3차 십자군의 첫번째 전투인 셈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티루스 공방전의 승리가 그리스도교측에 힘을불어넣었기 때문이다. 무적 살라딘이 더이상 무적이 아니게 된 것이다. ‘하틴‘ 이후 계속되던 패전의 여운도 일소된 듯했다. 티루스 공방전은 티루스라는 항구도시를 유지하는 이점에 더해 심리적으로도 그리스도교측에 매우 이롭게 작용했다. - P39

그리스도교측에는 최고사령관이라는 두뇌가 없었다. 반면 이슬람측은 수족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교군과 이슬람군이 정면으로 부딪친 아코 공방전은 제각기 멋대로 격돌하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그리스도교군과 이슬람군 모두 기록상으로는 격렬한 전투의 연속으로 표현했지만, 양쪽 다 그 전투들을 인과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었던 것이 2년 동안이나 결판이 나지 않았던 아코공방전의 실상이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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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 기사단과 성 요한 기사단으로 대표되는, 수도사와 기사의 겸업집단인 종교 기사단은 십자군의 산물이다. 수도회와 기사단은 그 밖에도 있었지만, 그 둘을 겸하는 집단은 십자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면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현상이 제1차 십자군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을 주목했으면 한다. 제1차 십자군을 이끈 제후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프랑스 왕보다 광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던 대영주들로, 그 봉건제후의부하 기사나 원래부터 주군이 없는 떠돌이 기사는 제1차 십자군 시대에 로렌 공작이나 툴루즈 백작의 군대에 가담해 오리엔트로 올 수 있었다. - P34

제2차 십자군의 실패는 무엇보다 중근동 현지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교도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 사람들은 유럽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프랑스 왕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었다. 그 양대유력자가 병사를 이끌고 와서, 실제로 적과 싸운 것은 나흘에 불과한짧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전투를 하고는 군대를 물려 돌아가버린 것이다. 유럽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P118

초기 연구자들은 이 성채들의 건축양식이 비잔틴제국 성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얼마 전,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한 연구자가 이에 이론을 제기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중세시대 성을 조사한 뒤 중근동에서의 실지답사를 통해 얻은생각에 기초해 쓴 연구논문에서, 십자군 시대의 성채 대부분이 비잔틴제국이 아니라 동시대 유럽 성채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젊은 학도의 이름은 T. E. Lawrence. 이후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나중에 로렌스는 역사학이 아닌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았지만, 그의 주장은 이후의 십자군 연구를바꾸어놓게 된다. - P176

산마르코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도제 미키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40척의 갤리선, 28척의 범선, 4척의 대형 갤리선으로 구성된 베네치아 함대를 도제가 직접 지휘해 오리엔트로 떠난다. 중근동의 성지를
‘해방‘하고 있는 십자군과 같은 그리스도교도로서 함께 싸우기 위해바다 쪽을 공격할 것이다. 아코, 하이파, 티루스, 아스칼론 등의 항구도시 중 어느 한 곳이, 아니면 그 모든 곳이 전장이 될 것이다. 이 군사행동으로 베네치아가 얻는 것은 공략에 성공한 후 이들 항구도시에베네치아의 교역기지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 군사행동에 필요한 비용은 얼마이고 참여하는 인원은 1만 명이 - P218

다. 시민 여러분이 이 군사행동에 대한 찬반을 결정해주었으면 한다.
이렇게 설명한 후에 표결로 결정하는 것이 중세 이탈리아 공화국의방식이었다. 군주국에서는 한 사람만 이런 결정을 하면 되지만 공화국에서는 다수가 결정하기 때문에 항상 설명할 책임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 P219

독자적인 거류지를 설치할 수 있는 건 그리스도교의 지배하에 들어간 도시에서만이었다. 같은 중근동에서도 아직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는 도시에서는 거류지 같은 것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거류지 설치는 불가능해도 상관을 두는 것은 가능했다. 물론 그 지역의 위정자인 술탄이나 아미르(태수)의 허가를 얻어야 했지만. - P220

3월 13일, 카이로를 떠난 살라딘이 다마스쿠스에 도착한다. 이 다마스쿠스에서 이슬람측은 십자군 시대가 된 후 처음으로, 이교도 배척을소리 높여 외치는 ‘성전(jihad)‘을 선언한다.
‘성전‘은 원래 이슬람교도가 외치기 시작한 말이므로 이슬람 세계의 성직자인 이맘 중에는 이전에도 이를 입에 담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대군을 앞에 두고서 최고사령관인 술탄이 선언한 것은 이때가처음이었다. - P295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십자군이 ‘해방‘하기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린것뿐이었다. 유럽에서 오는 순례를 허용하되, 예루살렘이 이슬람의지배하로 돌아갔다는 것을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이 인정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던 시대처럼 예루살렘 대주교가 남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지만, 성묘교회에서 봉사하는 수도사들이 남는 것은허용했다. 같은 이유로, 의료에만 종사하는 조건으로 병원 기사단의단원 열 명이 남는 것도 인정해주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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