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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 이태준 중단편전집 1 - 기생 산월이, 방물장사 늙은이, 달밤, 오몽녀, 봄 외 30편 ㅣ 한국문학을 권하다 7
이태준 지음, 고명철 추천 / 애플북스 / 2014년 6월
평점 :
1920~30년대 무렵 조선을 배경으로 쓴 이태준의 중단편소설을 모았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그가 나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들
내가 무엇으로 그의 걸음을 막을 수 있으랴.
모두가 한낱 그림자로다.
우리는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나고 마주하게 될까. 만남과 헤어짐도 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평생 마주하지 못하기도 하기에 하다 못해 전철에서 잠깐 스친 사람이라도 때론 그 일을 계기로 특별한 인연이 되지 않던가.
<그림자> 속 주인공은 안타깝지만 그 기회를 흘려보낸 경우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렇게 스친 인연이라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결혼의 악마성>을 보면서는 결혼은 결코 낭만이 아니라 현실임을 자각할 수 있다. 아버지가 폭군이었던 주인공은 말랑한 사람에게 끌렸다(너무 젠틀한 사람도 바람둥이라고 거부했음). 결국 그는 정직하고 따뜻한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던가. 현실주의자인 나는 돈 없는 결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반듯함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영민(또는 영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결혼은 결국? 자신의 이상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6년 만에 동경에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고향>의 주인공은 정작 고향이 낯설기만 하다. 비록 조선에서 태어나 자라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일에 따라 계속 장소를 옮겨 다닌 그는 한곳에 정착하며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6년 간의 외국 생활도 그는 이방인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는 고베 역 플랫폼에서 한 조선인 유학생을 만나 밥과 술을 얻어먹는다. 왠 오지라퍼인가 싶은데 그는 조만간 좋은 은행에 취직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시모노세키에서 만난 조선인들은 하나 같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과연 내가 조선에 가서 변변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과연 실제로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 일도 없소>는 돈이 되야 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편집장의 요구에 신문사 기자가 찾아간 곳에서 만난 기가 막힌 사연의 주인공의 이야기다. 기자는 생각한다. 이렇게나 말도 안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쩌면 이렇게 세상은 평화롭고 여유로울 수 있는가를 말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이것이 비단 과거의 일일까 생각했다. 오늘날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 않은 씁쓸한 생각.
동경에서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겠다 생각한 <실낙원 이야기> 속 주인공이 있다. 그러나 이상과는 달리 개인이 읽는 책을 검열받고 조선어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는 등 교사 생활이 순탄하지 않게 흘러간다. 식민지 시기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과연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을지.
<코스모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부모님의 요구에 따라 부잣집으로 시집갔으나(주인공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상대는 배려나 의식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과연 이후 그녀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꽃나무는 심어놓고>에서는 소작농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양반에게 부림 받던 소작농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일제강점기 들어와서는 더 힘든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지주가 일본 사람으로 바뀌면서 자기 땅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버티기 어려워진 것이다. 살아왔던 터전을 반강제로 떠나게 된 이들은 부푼 꿈을 가지고 서울로 오지만 그 돈으로는 변변한 집은 커녕 여관도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주인공은 처자식을 데리고 떠돌고... 도청에서는 사쿠라를 심는다고 인부들을 동원한다. 이들에게 현실은 너무나 잔인하다.
표제작 <달밤>의 주인공은 매일 늦는 신문 배달 때문에 분통을 터뜨린다. 알고 보니 그는 부업으로 신문 배달을 하는 것이었다. 이를 안 주인공이 그를 짠하게 여기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신문을 보는 집을 그렇게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만 해도 신문을 따로 보는 것조차 사치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신문이 귀하기는 커녕 소셜 미디어로도 뉴스를 보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매년 신문 구독을 해주십사 하는 전화를 받기도 하니 참 세상이 많이 변한 것만은 분명하다.
위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여기에 실린 단편 소설은 대체로 엘리트나 룸펜도 있지만 대체로 가진 것이 없거나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소시민들의 이야기들이 많다. 소설이지만 현실 풍자는 기본이고 약간의 블랙 코미디 같은 웃픔도 느낄 수가 있다.
또 맛깔나는 이북 사투리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묘미다. 이태준의 소설을 가볍게 경험해보기에 적합한 책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