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 이광수 장편소설 한국문학을 권하다 26
이광수 지음, 고정욱 추천 / 애플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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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삶을 연결해서 보는 편인가? 분리해서 보는 편인가?

작품을 미친듯이 잘 쓰면 작가의 이력이 좋지 않더라도 무마될 수 있는가 말이다.

나는 사실 그러질 못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보는 내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순수하게 작품만을 보자 하면서도 그러질 못하겠다.


당시 최고의 글쟁이였던 이광수는 누구보다 신문물을 빨리 받아들인 지식인이었다.

누구보다 대중을 이끌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좋은 방향으로 가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 소설은 1924년 11월 9일부터 1925년 9월 28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을 1934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한국 근대소설의 특징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전통주의적 가치관이 신문물(자본주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하며 파괴될듯 융합되는 혼란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소설 속에서 여러 군데 조선은 깨어나야 한다는 개화에 대한 생각과 기독교적 냄새를 맡을 수 있고(선교사라는 직업도 등장하고 회개한다고 예수를 찾는 등...) 이것이 마치 본인을 위한 변명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약간은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3.1운동에 뛰어든 학생들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의사의 의거 등 사건이 등장한다지만 줄거리의 대부분은 남녀의 치정극에 매몰되어 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극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다.)

아무리 신여성이 등장하고 자유연애가 유행했다고는 하지만 여성들이 특히 정조의 관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아 씁쓸함이 인다. 

일부 여성들은 '사랑만이 다가 아니다. 사랑하더라도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자' 한다. 그러나 그들도 버림받을까 두려워 전전긍긍 하기도 한다. 사랑을 쫓다 파멸하고 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막장드라마 같은 느낌도 나고(그때는 그게 흔했던 것 같지만) 진부한 스토리인데 재미나게 글을 잘 쓰는 능력을 가진지라 주인공 심정에 이입해서 분노하며 읽었다.

법률에는 첩을 보호하는 조문이 없다. 남편이 자기를 내보내려면 아무 때나 내보낼 수가 있다.
자기도 남의 남편을 빼앗아 사는 판에 남이 나의 남편을 빼앗는다고 나서서 말할 아무 권리도 없었다.
순영은 자기의 남편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오직 성욕의 만족인 것을 잘 알고 또 자기가 도저히 그 남편의 강한 성욕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을 안다.
또 순영은 과거 일 년 동안에 남편에게 육의 만족을 주느라고 기생이 하는 모든 버릇까지 배우려고 앴는 것을 생각하였고, 그러하는 동안에 께끗하던 몸에 매독과 임질까지 올린 것을 생각하였다.
‘그 놈 때문에 내가 일생을 망쳤는데.... 이놈, 내 일생을 망쳐놓고는....‘ - P409

봉구의 눈앞에는 다시 조선이 떠나온다. 산은 헐벗고 냇물은 말랐는데 그 틈에 끼여 있는 수없는 쓰러져가는 초가집들, 그 속에서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어 허덕이는 이들, 앓는 이들, 우는 이들, 죽는 이들, 희망 없는 기운 없는 눈들, 영양 불량과 과도한 노동으로 휘어진 등들, 가난과 천대에 시달려서 구부러지고 비틀어진 맘들,
그러면서도 서로 물고 할퀴는 비참한 모양과 소리, 이런 것이 봉구의 눈앞에 분명한 비전이 되어 나뜬다.
"가거라! 어머니의 사랑과 노예의 겸손으로 저들 불쌍한 백성에게로 가거라!"
봉구의 귀에는 분명히 이 소리가 울린다. - P493

"모든 빛난 것이여! 모든 호화로운 것이여! 모든 아름다운 것이여! 다 가라!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다 안락을 누릴 때까지 내게 한가함이 없으리라."
"가자! 우리 님에게로 가자! 불쌍한 조선 백성에게로 가자!
농부에게로 가자! 거기서 그들과 같이 땀 흘리고 그들과 같이 울고 웃고 그들과 같이 늙고 같이 죽어 그들과 같은 공동묘지에 묻히자." - P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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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마음공부 불경 마음공부 시리즈
페이융 지음, 허유영 옮김 / 유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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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야바라밀다심경 원문과 해석을 우리 말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원문에 담긴 이론과 현실 속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이론을 설명해준다. 저자가 설명을 잘한 것도 있겠지만 번역이 매끄러워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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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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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을 쓰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이 책을 썼고 에세이, 소설, 논픽션 분야로 나누어서 구체적인 조언을 한다. 하지만 책쓰기의 실천을 담고 있는 책들이 그렇듯 정답은 없는데 저자가 그 점을 강조해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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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읽었던 책을 간단히 정리한다.


주로 읽는 분야가 정해져 있는데 

이북으로 읽으면 평소 읽지 않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보니 소설은 정말 잘 안 읽는 편이다.

좀 다양하게 읽어야 하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잘 안된다.


그래도 예술 분야의 책은 잘은 모르지만 머리 식히는 용도로 종종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미지도 예쁘고 보는 맛도 있으니 말이다.


이번 달의 베스트는 역시 제2의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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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적 열정은 사랑과 나르시시즘과 마찬가지로 활동적이고 독립적인생활에 통합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이런 개인적 구원의 노력이 실패로끝날 수밖에 없다. 여자는 자기의 분신이나 신과 같은 비현실과 관계를 맺거나, 아니면 현실의 존재와 비현실적인 관계를 창조한다. 어쨌거나 그녀는 세계를 점유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기의 주관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녀의 자유는 신비화된 채 머물러 있다. - P924

여자의 에로티시즘의 성격과 자유로운 성생활의 어려움은 여자를 일부일처제로 유도한다. 하지만 애정 관계나 결혼을 직업과 양립하기에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곤란을 겪는다. 애인이나 남편이 여자에게 직업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 옆에 남자의 온기를 열렬히 바라지만 결혼의 속박을 꺼리는 콜레트의 『방랑하는 여자처럼 여자는 망설인다. 그녀가 굴복하면 다시 남자의 가신이 된다. 거부하면 정신을 메마르게 하는 고독에 처하게 된다. 오늘날남자는 배우자가 직업을 갖는 것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인다.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직업을 포기하도록 궁지에 몰린 젊은 아내를 보여 주는 콜레트 이베르Colette Yver(1874~1953)의 소설들은 시대에 다소 뒤처진다. 자유로운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각자를 풍요롭게 하며, 배우자의 일에서 각자는 자신의 독립성을 담보한다. 자족하는 여자는 노예 상태의 대가였던 부부 생활의 족쇄에서 남편을 해방한다. 남자가 선의의 세심한 사람이라면, 연인과 부부는 서로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고 관대함 속에서 완전한 평등에 도달한다. 때로 남자가 헌신적인 종복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루이스George Henry Lewes(1817~1878)는 조지 엘리엇Georg Eliot(1819~1880)의 곁에서 보통은 아내가 봉건 군주적 남편 주위에 만들어 내는, 좋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대개는 아직도 여자가 가정의 조화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 여자가 가사를 돌보고 혼자서 육아와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 P942

남자에겐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여자도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면제받을수 없는 여러 가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남편이 진정한 여자’를 아내로 삼으면서 발견해 낼 이익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녀는 아내들이 전통적으로 그런 것처럼 우아해지고 싶고, 좋은 주부가 되길 원하고, 헌신적인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런 임무는 여자를 쉽게 녹초로 만든다. 그녀는 남편에대한 존경심과 더불어 자기에 대한 성실함으로 그 임무를 맡는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그녀는 여자로서의 자기 운명에서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기때문이다. - P943

지레 졌다는 생각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모든 성공의 기회를 남자들에게 팽개치게 되는것이다. 이런 패배주의의 결과, 여자는 보잘것없는 성공을 쉽사리 달게 받아들인다. 목표를 감히 높게 잡지 못한다. 피상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에 진입하므로 야심을아주 빨리 제한한다. 그녀에게는 종종 자기가 생계를 꾸려 간다는 사실이 상당히큰 공적처럼 보인다. 다른 많은 여자처럼 자기의 운명을 한 남자에게 맡길 수도있었다. 계속해서 자립하려면 그녀에게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은 자부심을느끼게 하지만 그녀를 소진시켜 버린다. 일단 무언가를 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이그녀에게는 아주 많은 일을 해낸 것처럼 보인다. 여자로서는 참 대단한 거야‘라고 생각한다. 어떤 색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한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남자라면 첫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와 같은 직위를 차지한 여자는 프랑스에서 나밖에 없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 이런 겸손에는 조심스러움이 들어 있다. 여자는 더 출세하려다가 혹시 좌절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두려위하고 있다. 여자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층 계급은 갑자기 출세한 하층 계급 사람에게 적의를 품는다. 백인들은 흑인 의사에게 진료받으러 가지 않고, 남자들도 여의사에게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하층 계급 출신으로 자기들 특유의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대개 운명을 극복한 사람에 대해 거센 반감을 품고 있어서, 그들 역시 지배자 쪽으로 돌아서기를 선호하게 된다. 특히 여자 대부분은 남 - P949

자 숭배에 빠져 있어서 의사, 변호사, 사장 등의 직업에서 열심히 남자를 찾는다. 남자나 여자나 여자의 명령 아래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여자의 상관들은비록 그녀를 높게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그녀에 대해 언제나 약간의 거만함을 보일 것이다. 여자라는 사실이 결함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특이한 것이다. 여자는 본디 자기에게 부여되지 않은 신뢰를 끊임없이 쟁취해야만 한다. 애초에 여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어서 진가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녀가가치가 있다면 그렇게 하리라고 사람들은 단언한다. 그러나 가치는 주어진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훌륭히 발전시켜 이루어낸 결과다. 불리한 편견이 자기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흔히 볼 수 있듯이 초기의 열등감은 권위를 과장되게 가장하는 자기방어 반응을초래한다. - P950

주요한 목표가 추상적인 자기 확립이나 성공에 대한 의례적 만족이라면, 그녀들은 세계를 응시하는 데 전념하지 못할 것이다. 즉, 예술 속에서 세계를 새롭게 창조할 수 없을 것이다. - P956

여자들은 인간의 조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제야 겨우 그것을 전부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녀들의 작품에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적 반향과 블랙 유머가 빠져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여자들은 세계를 괄호 속에 넣지 않고, 세계에 질문을 제기하지 않으며, 세계의 모순을 고발하지 않는다. 즉, 세계를 고지식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다수의 남자도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여자가 초라하게 보이는 것은 위대하다‘고 불릴 만한 몇 명의 드문 예술가들과비교할 때다. 여자를 한계 짓는 것은 운명이 아니다. 어째서 여자에게는 가장 높은 정상에 도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지 - 왜 앞으로도 당분간은 주어지지 않을 것인지 -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962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동류로 인정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여성성이라는 것이 현 상태대로 영속되는 한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여성성을 유지하는 데여자와 남자 중 어느 쪽이 더 필사적인가? 여성성에서 해방되는 여자도 역시 여성성의 특전만은 보존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남자는 여자가 그 특전의 제한을받아들일 것을 주장한다. "다른 쪽 성을 두둔하기보다 한 쪽 성을 비난하기가 더쉽다"고 몽테뉴는 말한다. 비난과 칭찬을 분배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사실여기서 악순환을 끊기가 그토록 힘든 것은 남녀 양성이 저마다 상대의 희생자인동시에 자기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이 싸움이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자유에서 대결하는 두 적수 사이에는 화합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복잡성은 각 진영이 적의 공범이기도 하다는 데서 온다. 여자는 포기의 꿈을 추구하고 있고, 남자는 자기소외의 꿈을 뒤쫓고 있다. 거짓된 삶은 아무 이익이 안 된다. 저마다 안이함에 유혹되어 스스로 초래한 불행을상대방의 탓으로 돌린다. 여자와 남자가 저마다 상대방에게 증오하는 것은 자신의 기만과 비겁함의 생생한 실패다. - P974

여자를 해방한다는 것은 여자가 남자와 맺는 관계 속에 여자를 가두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지 그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자기를 위해 살아간다고 해서 남자를 위해 존재하기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즉, 서로 주체로 인정하면서 각자는 상대에게 타자로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그들 관계의 상호성은 두 범주로 분리된 인간의 분할이 일으키는 기적들, 즉 욕망, 소유, 사랑, 꿈, 모험을 없애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주기‘, ‘정복하기‘, 결합하기‘라는 말들은 그 의미를 간직할 것이다. 반대로 인류의반의 노예 상태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위선적인 체제가 사라질 때, 인류의 ‘구분‘은 그 진정한 의미를 드러낼 것이고, 인간 남녀는 그 진정한 모습을 갖게될 것이다. - P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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