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저녁까지 걷기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리디 살베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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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해야 했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 조각이었기에 그것을 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제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었다. 자코메티라… 몇 년전 자코메티 전시를 보러 갔다가 ‘걷는 인간’을 보고 오래도록 잔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작가인 리디 살베르는 2014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그는 우연히 알리나를 통해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온전한 하룻밤의 시간을 보내며 자코메티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걷는 인간’을 보면서 작가가 어떠한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오래도록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작가는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토해내는데 정서적 측면에서 상당 부분 공감이 갔다. 그녀는 이민자 부모 아래 자란 폭력적인 아버지 하에서 학대를 받은 경험을 고백하며 상처와 콤플렉스가 오래도록 그의 정서를 뒤흔들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과거는 흘러갔지만 잔상과 흔적은 오래 가기 마련이다.

아무튼 그녀는 ‘걷는 인간’ 앞에서 거대한 벽을 느끼며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 내적 스트레스가 오히려 자신과 주변을 향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함께 사는 반려자와 입씨름을 하며 미술관의 미술품들이 자본주의의 노예로 좋은 투자처일 뿐 아니냐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니까. 뭐 일부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어떤 미술관의 미술품은 전리품인 경우가 있고 어찌 되었든 미술관에서는 돈이 되는 전시품을 모은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특히나 사설 미술관은 돈이 되지 않으면 영업을 이어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자코메티의 삶과 예술에 세 명의 중요 인물이 등장한다. 아네트, 이사쿠 야나이하라, 그리고 카롤린. 아네트는 아내이자 모델 겸 작업 조수였으며 그의 작품에서 상당 부분 등장했기에 가장 중요한 위치였다고 볼 수 있다. 둘은 술집에서 만나 동거 후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야나이하라는 사르트르의 소개로 자코메티를 만났고 이후 그의 모델이 되었다. 카롤린은 자코메티의 마지막 연인이었는데 자코메티는 그녀에게서 강한 에너지와 힘을 느꼈던 모양이다. 이처럼 삶과 예술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걷는 인간’은 뼈대만 남은 사람이 앞을 향해 기운 채로 서 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궁금했다. 아래 구절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실패를 계속해야 했고, 고꾸라져야 했다. 결과에 대한 보장 없이 실패해야 했고, 그 모든 암중모색과 망침, 후회, 망설임, 엉김, 돌출, 사고, 비틀림, 추함, 자신이 견뎌낸 모든 실패와 불확실성을 작품에 담아야 했다.
쉬지 않고 고집스레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건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저 자기 내면에서 나아가는 것일지라도.
그는 계속 걸어야 했다. 걷는 행위가 어쩔 도리 없이 그를 끔찍한 난파로 이끌지라도.
심장이 고동치는 한 걷고, 걷고, 걸어야만 했다.

자코메티 하면 실존주의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는 삶을 중요시 여겼고 수없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실패를 새로운 창작을 위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 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나아가 그것이 죽음의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한다. 계속 걸어가다보면 그 끝은 죽음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공교롭게도 자코메티의 전시품을 피카소 미술관에서 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삶은 피카소와 비견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피카소는 예술을 사랑했고 삶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사’보다는 ‘생’을 추구했던 작가였다고. 하지만 나는 자코메티도 예술을 사랑했고 삶을 사랑했다고 본다. 다만 둘은 그 방식의 차이가 있었을 뿐.

예술은 사는 일이 우리에게 고통을 안긴다는 사실에 맞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예술이 우리의 기쁨과 삶에 대한 허기를 늘리기도 한다는 것. 예술이 죽음에 당당히 도전하거나 냉혹하게 우리에게 죽음을 상기하기도 한다는 것. 몸과 영혼이 포맷된 세상에 대한 우리의 거부를 날카롭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시대는 더이상 불가능을 희망하지 말라고 엄명하는데 예술은 불가능을 좇는 우리의 취향을 자극하기도 한다는 것. 유용한 목적만 좇는 정신이 곳곳에서 우세할 때 예술이 무용한 것에 대한 우리의 취향을 되살리기도 한다는 것. 우리가 그것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꿈을 꾸고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강렬한 욕망을 다시 솟구치게 하기도 한다는 것. 우리가 유년기에 무척 좋아했던 색채들, 특히 빨강에 대한 취향, 잊어버린 취향을 우리에게 다시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 형태와 사물에 대한 취향, 그것들의 소재와 빛에 대한 취향, 이 세계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주어진 단순한 사물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을 다시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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