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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 ㅣ 컴북스 이론총서
김환석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4년 6월
평점 :
브뤼노 라투르의 입문서인 이 책은 작년에 나왔다. 올해 나온 책 이외에 라투르의 사상을 요약 정리하여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신간과 서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은 여러 모로 라투르 사상의 흐름을 잘 정리한 책이라 보여진다. 한 명의 사상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약력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그의 이력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사상이 전개되고 심화되는 과정을 저작과 함께 소개한다. 이보다 탁월한 구성이 있을까.
브뤼노 라투르는 임용 시험에 합격하고 교사에 근무했다. 그리고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으면서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프랑스과학연구소(ORSTOM)에 군 복무 대신 근무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가진 동시에 과학이 객관적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른 학문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인류학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그의 사상에 다양한 학문이 걸쳐 있는 것은 이런 이력에서 온 경험들이 축적된 덕분이 아닐 수 없다.
라투르는 이후 엔지니어 양성기관인 파리 국립고등광산대 혁신사회과학센터의 교수에 임용되었다. 그곳에서 과학사회학 연구자인 미셸 칼롱을 만나 행위자 연결망 이론(ANT)을 개발하는데 여기에 영국 과학지식사회학 연구자인 존 로도 동참했다.
행위자 연결망 이론은 과학과 기술의 여러 서로 다른 요소들이 과학자, 엔지니어에 의해 긴밀한 연결망으로 결합되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고 정의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과학자, 엔지니어 등의 인간 행위자 뿐 아니라 기구 등 사물에도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를 읽을 때 이 부분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다. 사물에도 역할을 부여한다고? 당시로서는 정말이지 파격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서구 근대주의의 모순, 과학기술에 의한 산물이 무한대로 뻗어 나가며 현대의 생태 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이는 사람 대 사물 등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존재론과 행위 원칙을 세워야 함을 알린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비근대주의자이지 탈근대주의자는 아니라고 명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포스트 모더니즘, 탈근대 이론 등과 구분해볼 수 있겠다).
라투르는 과학에는 어느 정도 중요성을 부여했으나 사회학에는 유독 비판적이었던 모습을 보인다. 사회학은 사회학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다른 것과 결합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예를 들면 철학이나 과학과의 결합을 말한 것이 아닐까.
그는 ANT에서 나아가 지구인이 살아가기 위한 존재 양식의 인류학적 방법론을 새롭게 구상한다.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가이아 이론이었다. 가이아 이론은 1970년대 이미 나온 바 있는 이론으로 지구의 자기조절 시스템에 대한 자연 과학론이었다.
가이아 정치생태학을 통해 인류세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려는 라투르와 슐츠가 ‘계급’ 개념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 것은, 과연 어떻게 하면 서구 역사에서 정치를 조직하는 이념이었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그리고 극우 민족주의)에 이어 생태주의가 그러한 이념이 될 수 있을지 고심한 결과였다. - P157
계급 투쟁은, 지구사회적 갈등의 얽힘이었다. 경제화를 통해 이를 협소하게 틀 짓는 것은 지구적 존재들(인간 포함)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생태계급은 경제화 대신 거주 가능성 문제를 제기한다. - P161
이처럼 라투르는 가이아 이론을 ANT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정치 생태학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가 제시한 생태 계급은 세계화에 반대하고, 국경으로 둘러싸인 내부로의 회귀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챕터 제목이 ‘지구정치신학’이라는 것에 눈길을 끌었다. 그의 사상에 종교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존재론적 관점에서 실재를 의식하게 하여 이전에 사실이라고 생각한 것을 새롭게 재정렬할 수 있게끔 한다고 보았다. 그는 정치신학이 현대에서 종교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이라고 말한다. 종교의 순기능이라면 여러모로 이기주의와 파괴 행태로 나아가는 이 세계의 행위자들에게 윤리적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인류세에 대응해야 하는 정치신학을 ‘지구정치신학’으로 명명했다. 라투르는 지구종교신학의 올바른 행위자로 공교롭게도 얼마 전 타계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이 자매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을 무책임하게 사용하고 남용하며 가한 해악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는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 자신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브뤼노 라투르의 사상을 시간 순에 따라 요약 정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여러 모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