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장하는 바는, (현대 오리엔탈리즘의 근본이 된)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이론과 실천을 가장 중요한 국면에서 파악하려고 한다면, 그것은동양에 관한 객관적 지식에 별안간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상속되어 왔고, 세속화되어 왔고, 재배치되어 왔으며 나아가 문헌학과같은 학문 분야에 의해 변형된 한 세트의 구조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학문 분야도 기독교적인 초자연 신앙이 자연화되고 근대화되며 세속화된 대체물(또는 변형)에 다름 아니었다. 동양은새로운 텍스트나 관념의 형태를 취하여 이러한 구조에 순응하였다. - P220
오리엔탈리스트는 상당히 광범위한 비일상적인 체험을 그의 동포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히브리 민족의 ‘참으로 신성한‘ 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문학의 일종을 동포의 공유재산으로 삼기 위하여, 더욱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리엔탈리스트는 멀리 떨어진 동양의 심연으로부터 유익한 보석만을 낚아 올리기 때문에, 또 그 힘을 빌리지 않고는 동양을 알수 없기 때문에 오리엔탈리스트라는 존재가 필요하며, 동양 문헌 자체를 통째로 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또한 진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사시가 도입한 단편이론으로서 이는 당시 낭만주의에 공통된 관심이었다. - P231
르낭은 문헌학으로부터 오리엔탈리즘에 옮겨 왔다. 오리엔탈리즘에가장 중요한 기술적인 여러 특징을 부여한 그 점이야말로, 문헌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지극히 풍부하고도 높은 문화적 지위였다. - P235
사물에 관한 르낭의 사고방식이 철저히 역사적인 것이었고, 또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형태학적이기 때문에, 그가 젊은 날에 종교로부터 문헌학이라는 학문 분야로 옮겨 갔을 때, 과거에 종교로부터 얻은 역사적 세계관을 새로운 세속의 학문에까지 존속시키게 되었음은 지극히 당연한일이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단지 하나의 작업만이 나의 생활을 충족시키는 가치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세속의 학문이 나에게 제공해 주는것은 훨씬 광범한 수단에 의한, 기독교에 관한 비판적 연구(기독교의 역사와 기원을 주제로 하는 르낭의 중요한 학문상의 시도를 암시하고 있는)의 수행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르낭은 기독교 신앙의 상실이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문헌학에 동화시켰다. - P241
르낭에게 문헌학자라는 것은, 낡은 기독교 신과의 모든 연관성을 완전히 단절하는 것, 그결과 그것에 대체되는 새로운 교의(필경 과학)가 소위 자유롭고 새로운장소를 차지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르낭의 모든 학문 생애는 이러한 진보의 과정을 충실하게 하는 데에 바쳐졌다. - P246
문헌학자는 어떤 언어학적인 사실을 어떤 방법으로 일정한 역사상의 시기대응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류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러나르낭도 가끔 인정해야 했던 바와 같이 언어학상의 시간성이나 역사에는 결손 부분이나 거대한 불연속성 또는 가정에 불과한 시간 등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므로 언어학상의 사건은 비직선적이고 근본적으로 불연속적인 시간적 차원 속에서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그 차원은 언어학자에 의해 지극히 독특한 방법으로 관리된다. 이러한 방법이 바로 비교 - P253
라고 하는 점은, 동양어의 셈 부문에 관하여 르낭의 논문 전체가 왜곡하여 논한 바로 그것이다. 곧 거기에서는 인도-유럽어가 생생한 유기적지표로 사용된 반면, 동양의 셈어는 그것과 비교하여 비유기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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