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이후 공개적으로 부패를표명한 천도교다. 그리고 효율적인 부왜 활동을 부추기기 위해 중국대륙침략전쟁 뒤인 1937년부터 최린이 대표하는 천도교 신파에서는 이른바 ‘조선신궁‘을 ‘참배하고, ‘국기선양식‘에 참가하면서 전시 협력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황승봉 또한 그러한 교계 입장에 길을 같이했다. - P144
천도교 동화집 『새선물은 원전 확정과 독해의어려움을 감추고 있음에도 나라잃은시대 천도교 교계가 내놓은 희귀 동화집이다. 천도교 자장 아래서 동화를 창작한 작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오롯 - P174
이 천도교 동화만을 써서 낱책으로 묶어 낸 경우는 없었다. 어린이를 위한교육동화의 경우, 가장 활발하게 내놓은 곳은 기독교 교계다. 그런 가운데서 황승봉은 평안북도 신의주(의주)의 간단치 않을 출판 환경을 딛고 천도교의 역사와 교리를 일깨우기 위한 뜻으로 『새선물』을 펴냈다. 신의주 지역문학의 사상적 다양성뿐 아니라 역내 천도교계의 유별난 역량을 증명하는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 P175
이른바 ‘조국 해방 전쟁‘ 참전기와 종군소설을 통해 월북작가의 정치적이념적 선택이 옳았음을 알리고 싶었을 터이다. 그가 선악이분법이 확연한 종군소설이라는 문학적 전유 방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 - P222
던 숨겨진 의도는 자기가 떠나온 이남은 "미제 침략과 매국노의 쑥대밭"이고 새로 선택한 이북이야말로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건설장"이라는 비속사회학적 문화 심리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갑기의 다양한 창작활동은 그리 큰 문학적 역량을 발휘하거나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개인숭배와 당문학을 중시하는 북 특유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주류인 북한 문단에서 주변화되었다. 단편집『도솔봉』(1957)에서 해방기 좌익의 인민항쟁과 전쟁기 종군 체험을 창작하였으나 카프 시기 동지였던 한효에게 자연주의, 형식주의적 수법의 폐해를 지적받기도 하였다. 1930년대 한창 시절에 문학과 미술, 연극, 출판 등진보적 문예, 문필활동을 활기차게 전개했던 때와는 비교불가하게 주변으로 몰린 것이다. - P223
김상덕은 『세계명작아동극집』(1936)을 시작으로 『조선유희동요곡집』(1937)을 발행하고, 체제에 복무한 총후(銃後, 후방)의 아동 및 어머니상을 제시한『어머니 독본』(1941), 『어린이독본』(1942), 『어머니의 힘』(1943), 『안해의 결심」(동), 「암야의 등불』(동), 『가정야담 효부』(1944), 『어머니의 승리』(동), 시국적색체가 강한 미담집 소국민독본 이인석 상등병(國民讀本 李仁錫上等兵)』(1941)등을 다수 펴냈지만 본격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김상덕은 가네우미 소토쿠(金海相德)라는 창씨명으로, 「반도명작동화집(半島童話集)』(1943)과 『조선 고전 이야기(朝鮮古典物語)』(1944), 장편동화다로의 모험(太郞冒險)』(同, 1944) 등을 일본어로 간행해 주목된다. 이 글에서는 새롭게 발굴한 사화집 『그림이야기 외쪽눈 영웅物語 片英雄)』(1945)을 분석하였다. 특히 일본의 패망 직전에 발행된 일본어 조선 설화집, 고전소설집, 사화집은 모두 김해상덕 편, 현재덕 그림으로 발행되었고, 조선어로 조선적인 글을 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적인 것을 남기려는시도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작품집은 특히 서문에서 시국적 색채를 강하게 표출하며 전시체제에 편승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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