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왕조들의 ‘귀화‘ 많은 경우 어떤 흥겨운 곡예가 필요했던 작전들 •는 이윽고 시턴-왓슨이 신랄하게 ‘관제 민족주의‘ (officialnationalism)‘라고 불렀던 것으로 이어졌으며, 차르식 러시아화는 이것의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일 뿐이다. 이러한 ‘관제 민족주의‘들은 특히 중세로부터 축적되어 온 거대한 다언어 영지에 대한 왕조 권력의 유지를귀화와 결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짧고 꽉 끼는민족의 피부를 제국의 거인 같은 몸통에 늘여 씌우기 위한 수단으로서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차르의 이질적인 신민 집단에 대한 ‘러시아화‘ 는 그리하여 고래의 것 하나와 꽤 새로운 것 하나, 이렇게 두 가지 대립되는 정치적 질서를 폭력적. 의식적으로 용접하는 과정을 표상했다. - P139
관제 민족주의들은 반동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보수적인 정책으로서, 대개 자연발생적으로 선행했던 인민 민족주의 모델을 각색한 것이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유럽과레반트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지도 않았다.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매우유사한 정책들이 같은 부류의 집단들에 의해 19세기 동안 예속된 광대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영토들에서 추진되었다. 마지막으로, 비유럽 문화 - P170
와 역사로 굴절해 들어간 관제 민족주의는 직접 예속을 피한 얼마 안 되는 지구(그중 일본과 시암)에서 토착 지배 집단에 의해 선택, 모방되었다. 거의 모든 경우, 관제 민족주의는 민족과 왕조의 영지 간의 불일치를은폐했다. 그리하여 나타난 범세계적 모순에 의하면, 슬로바키아인들은마자르화되고, 인도인들은 잉글랜드화되고, 한국인들은 일본화되겠지만, 그들은 마자르인들, 잉글랜드인들, 일본인들을 통치할 수 있는 순례에 참가할 허가를 받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들이 초대받은 연회는 늘 알고 보면 먹을 것이 없는 잔치였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유는 단순히 인종주의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의 핵심에서 민족들- 헝가리 민족, 잉글랜드 민족, 일본 민족- 도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민족들은 ‘외국‘의 지배에 본능적으로 저항적이기도 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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