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인(仁)의 도덕형이상학 사실 ‘도덕형이상학‘이라는 표현은 훗날의 - P211

맹자나 성리학자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지만을 세움으로써 ‘예‘를 철학적으로 정초했다. 공자는 단순히 주례를 복권시키고자 한 것이 아니라그것을 새롭게 정초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이 어질지 않다면 ‘예‘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 어질지 않다면 ‘악‘이 다 무엇이란 말이냐?"(人而不如禮何人而不如何공자는 법은 예에 의해 정초되어야 하고, 예는 인에 의해 정초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 하나, 공자는 동북아 문명에인문세계라는 새로운 삶의 차원을 도래시켰다. 공자는 인간에게 먹고사는것, 싸우는 것, 권력을 잡는 것 등등 외에도 어떤 다른 세계, 인문학적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가 교육했던 시, 예, 악 등은 예전과는다른 차원의 뉘앙스를 띤 것이었다. 그는 "시로 일으키고, 예로 세우고, 악으로 갈무리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했고, 이렇게 이루어지는 세계는 인간이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또 다른 차원이었다.
한편으로 윤리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 인문세계라는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점에서, 공자는 동북아 문명사에 결정적인 지도리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자는 그의 이 숭고한 가치를 순수학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실제의 정치적/사회적 삶에도 구현할 수 있기를 갈망했다. - P212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치론적인 문제들을 해결코자 한 것이 소크라테스 사유의 핵심이다. 반면, 공자의 사유는 역사적이다. 공자 역시 인, 효, 충서, 예악 등등에 대해 새롭게 사유했으나, 그 양태는 논리적 정의가 아니라 ‘조술(祖)‘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주공단에 의해 정립되고 이후 계속 변해온 역사를 반추하면서 ‘경(經)‘들을 새롭게 정리하고 그 과정에서 당대의퇴락한 가치들을 새롭게 하려 한 것이다. 또한, 자신으로서는 ‘인‘이나 ‘군자‘를 비롯해 삶에 대한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공자는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제자들 또는 다른 인물들의 고유한 인품과 개성에 세심하게 주목하면서 가르침을 베풀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그는 자로와 염구에게, 또 자장과 자하에게 각각 반대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와 대조적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자신이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의 고유함 및 대화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지만, 그가 추구한것은 바로 그런 개별성과 상황성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보편성과엄밀성이었기 때문이다. - P243

지중해세계에서 소크라테스의 사유는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구체화 또는 변형되어 이어졌으며 주로상당 수준의 지식층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근대 이후에도 ‘서구적 지성‘이라 할 만한 과학적 - 철학적 사유는 소크라테스의 사유를 그 근간으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중적 차원에서 지중해세계와 훗날의 서구를 지배한 것은 유대-기독교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근대 이후의 자연과학적 전통 점차 즉물적 형태를 띠어가는 과학기술과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 - 기독교적 가치가 기묘하게 공존하고 그 사이에서 소크라테스적 - 플라톤적 지성은 쇠잔해져버린 것이 오늘날 서구 문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동북아사회의 경우 공자의 가르침은 지식인들의 차원은 물론 이 사회/문명 전반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유가철학일 뿐만 아니라 ‘유교‘로서 동북아 문명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도교나 특히 불교가 유교를 압도했을 때도 있었지만, 동북아사회 전반을 이끌고 간 정신적축은 역시 유교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까지도그렇다. - P248

묵가사상은 강호의 철학으로 자리 잡기에는 너무나 비- 낭만적이었고, 종교가 되기에는 너무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또, 혁명의 종교가 되기에는 너무 봉건적이었고, 아르카디아의 사상이 되기에는 ‘천하의철학‘의 성격이 너무 강했다. 또, 묵가의 논리학, 언어철학 등의 작업은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는 했으나 명가와 마찬가지로 결국 동북아 사상사의 굵직한 갈래로는 성립할 수 없었다. 동북아의 사유는 생래적으로추상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묵가는 유가와 같은 인문주의를 제공하지 못했고, 법가적 통치술로서 발전되지도 못했고, 도가적 자연주의로서 받아들여지지도 못했고, 자신의 장기인 논리학, 언어철학으로서 뻗어나가지도 못했다. - P298

모든 동물들은 각각의 종류에 따라 고유한 본성을 가진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여서, 모든 인간은 공통의 본성을 가지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순임금과 같이 될 수 있다. 물론 삶의 과정에서 이 본성은 발휘되지 못하고 어그러진 형태로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황폐화된 산을 보고서 그 산이 본래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이듯이, 아무리 많이 일그러진 삶 앞에서도 그 안에 원래부터 깃들어 있는 성선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방심(心)‘을 극복하고 ‘존심(心)‘을 지향하라는 맹자의 가르침은 "네 영혼을 돌보라"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맹자의 이런 생각은 그 논변의 - P354

당성에서나(위의 논변들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의 갈래들이 존재한다) 결론의 타당성에서나 많은 논쟁거리를 안고 있다. 맹자의 입장은 성의 미규정성을주장한 고자나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 등에 비해 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훗날 유가사상이 동북아세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그의 입장은유가사상/유교의 기본 입장으로 자리 잡게 된다. - P355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전국시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추구했던) 논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요, 어떤 지식을 얻는 것도 아니요,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장자는 꿈과 깨어남을 이야기했으면서도 그 자신이 실제 지적 타자들과 부딪치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에게 ‘논쟁‘이란 삶의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문제가 된 것은 더 큰 타자성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학문은 맹자 등의 학문처럼 당대의현학(學)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그의 실존을 송두리째 바꾸어 삶과죽음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장자의 철학은 위대한 ‘변신‘의 철학이다. 그 변신이 향하는 곳은 물론 ‘실‘의 세계가 아니라 ‘허‘의 차원이다. - P366

맹자의 사유와 장자의 사유는상앙으로 대변되는 전국시대 변법의 질서에 대한 두 상이한 응답이었다고할 수 있다. 맹자는 민본사상을 역설함으로써 법가적 냉혹함에 저항하고자 했고, 장자는 무위사상을 전개함으로써 작위의 폭력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했다. 그러나 역사는 비극적이게도 이 두 길이 아니라 상앙의 길, 진(秦)의 제국화라는 길을 걷게 된다. - P368

이익을 탐하는 것, 타인을 질시하는 것, 감각에 미혹되는 것, 이 세 가지가 인간을 악한 존재로 만든다. 순자는 인간이란 그 본성이 바로 이렇기에
‘예‘를 통한 교화에 의해서만 선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또는 달리 해석하면,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예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예가 없는 곳에서는 인간은 악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장자와 대조적으로, 문명/문화야말로 인간을 선하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순자가 생각하는 문화세계는 상대적으로 내면적이고 인문적인 공자의 것에 비해 보다 외면적이고사회적이다. - P382

군주가 허정(虛靜)한 마음을 유지할 때 거기에 도가 깃들게 되며, 마음이 빌 때 몸이 편하듯이 군주가 ‘무위함으로써 백관이 ‘유위‘할 수 있다.
북극성이 제자리를 지킬 때 뭇별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 수 있는 이치와도 같다고 하겠다. 황로지학은 군주의 내업, 심술(心), 백심(心)을 통해무위지치의 정치철학을 정초하고자 했다.
이 구도를 기 중심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황로지학에서 생명은 ‘정기‘
로 표현되며, 이 생명을 지키는 양생술이 핵심을 이룬다. 이 경우 도와 기그리고 심과 생/신은 거의 동일시되며, 도/기를 자신의 몸 안에 축적하 - P394

고 보존하고 발달시킬 때 ‘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 P395

법가사상의 요체는 형명지학 또는 ‘신상필벌‘에 있다. 법가 사상가들은상보다는 벌에 무게를 두긴 했지만, 상이 백성들의 충성을 끌어내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핵심적인 것은 신민이 제시한 목표(名)와 실제 이룬 업적(刑=形)이 일치하는가의 여부를 확인해 상벌을 공정하게 실시하는 것이었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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