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세계의 경우 자연철학이 기저를 이루었고 때문에 인문 현상들도 ‘지스‘로 환원해서 설명코자했다면 (그 극한은 원자론이다), 동북아세계의 경우 인문학이 기저를 이루었기 때문에 자연 현상들도 그 의미에 기반을 두고서 해석되었다. 그런 만큼이 문명에서 자연(天地)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는 의미로서의 자연이다.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이면에서 어떤 본질을읽어내려 했고, 이 본질은 ‘실재‘였다. 반면 동북아의 ‘무‘ 등은 자연 현상에서 인간적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읽어내려 한 것이다. 전자의경우 자연 현상 저편으로 넘어가 실재를 찾았고, 후자의 경우 자연 현상이편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려 했다. - P33

지중해세계와 지리적 구조는 전혀 달랐지만, 고대 동북아세계 역시 무수한 이민족들이 명멸한 공간이었다. ‘중국‘의 역사가 마치 어떤 공동의 틀 내에서 성씨들만 교체되어간 역사라고 보는 것은 훗날 중원 대륙을 차지한 사람들이 사후적으로 구성한 역사일 뿐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ㅡ를 정립하고 하·은·주 삼대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아울러염제와 치우 등을 악역으로 배치함으로써 동북아의 역사를 일종의 선/악의 구도로, 정통/이단의 구도로 정립했다. 이렇게 본래 극히 이질적이고 역동적이었던 역사를 추후에 매끄럽게 재단하고, 또 선/악, 정통/이단의 구도로 구성해냄으로써 비로소 "중국"이라는 하나의 동일성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바로 『서경』이 이미 이러한 재구성의 원형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상고 시대를 논할 때, 우리는 사후적으로 구성된 이동일성 아래로 내려가 다채롭고 역동적인 차이생성을, 실제 역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동북아 ‘중원‘의 역사를 말할 수는 있어도 ‘중국‘이라는특정한 나라의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중원의 역사는 다양한종족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낸 역사일 뿐이다. - P54

그리스 자연철학과 동북아 역학의 차이는 다음 인용문에 특히종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성인이 ‘괘‘를 긋고 ‘상‘을 관찰해 ‘사‘를 걺으로써 길함과 흉함을 밝히려 했다. 강함과 유함이 서로 밀어 (剛柔相推) 변화가 생겨나니, 그로써 길함과 흉함은 얻고 잃음의 상이요, 후회와 부끄러움(悔)은 안타까움과 짓눌림 (憂)의 상이요, 변함과 화함은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이요, 강함과 유함은 낮과 밤의 상이다. 6효의 변화가 하늘·땅· 사람의 길(三極之道)을 세운다.
하여 군자는 ‘역‘의 배열에 입각해 편안히 안거할 수 있으며, 효사를 읽음으로써 즐 - P127

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군자가 거할 때는 ‘상‘을 보고 ‘사‘를 즐기지만 동할 때에는 ‘변‘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 그를 도우니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라 한 것이다.(「사전 상」, 2장) - P128

동북아의 세계는 ‘작(作)‘의 세계가 아니라 ‘생(生)‘의 세계이다. 따라서 조물주 개념은 탈각된다. 역학에도 기학에도 조물주의 개념은 없다. 동북아에도 ‘신‘들은 있지만, 이들은 세계에 내재적 - P186

이다. 또, 이 ‘생‘의 사유에서 설계도 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질서만이 인정된다. 이 때문에 기에 구현되는 선험적 질서로서의 이데아 개념 또한 없다. 다만 기 안에 잠재해 있고 기가 특정한 물(物)로서 개별화될 때 비로소 확인되는 내재적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기의세계는 코라의 세계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경우 코라의 의미는 현저하게바뀐다. 그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물질성, 생명성, 정신성을 내함(含)하고 있는 유일의 실체이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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