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궁핍을 구분하는 것은 일차적 구분에불과하며, 단순하고, 그 자체로는 아직 충분히 정확하지 않다.
이 모든 일이 강제적인 필요의 산물만은 아니다. 인간은 달리 어쩔 수 없으므로 먹고 입고 집을 짓고 살지만, 그래도 그가 하는 것과는 다르게 먹고 입고 집을 짓고 살 수도 있다. 유행의 급변은 이것을 "통시적으로(dia-chronique)" 이야기하고, 현재와 과거의 매 순간 세계의 대립은 이것을 "공시적으로(synchronique)"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만 사물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아니라 "사물과 말"의 영역에 있다. 이때 이 "말"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의 - P437

미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 P438

"나는 효율성을 가진 전통적 활동을 기술이라고 부른다"라고 마르셀 모스는 말했다. 결국 기술은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노동을 적용하는 활동, 태초부터 영구히 계속되어온 훈련을 의미한다.
기술은 역사의 넓이를 가지고 있고, 필연적으로 역사의 완만함과 모호함을 나누어진다. 기술은 역사에 의해서 설명되고 또 기술이 역사를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둘 사이의 상관관계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와같이 역사 전체라는 극단적으로 확대된 영역에서는 하나의 움직임이 아니라여러 다양한 움직임과 다양한 반향, 다양한 "톱니바퀴의 물림이 있는 법이다. - P441

당시 중국과 이슬람은 오늘날 우리가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을 가진 부유한 사회였다. 그 옆의 서구는 아직 "프롤레타리아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3세기부터 장기적인 긴장이 물질문명을 흥기시켰고 서구세계의 심리를 변형시켰다는 점이다. 역사가들이 황금에대한 갈망, 세계에 대한 갈망, 혹은 향신료에 대한 갈망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 실용적인 적용에 대한 추구가 늘 함께 있었다. 그 - P545

것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인간의 노력을 경감시키고 동시에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세계를 장악하려는 의도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실제적 발견들의 축적, 그리고 에너지원이 되는 모든 것에 대한 - P546

커다란 흥미는 유럽이 본격적으로 성공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유럽의 참모습이었으며 우월성을 약속했다. - P547

기술은 인류의 생활을 앞으로 밀고 간다. 그러면서 기술은 작은 계단들을 올라가서 한단계 높은 층계참에서 새로운 균형을 이루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기술이 정체하는 것, 그리고 하나의 "혁명"에서 다음 혁명으로, 하나의 혁신에서 다음 혁신으로 진보해가는 것은 감지할 수 없는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은 마치 끊임없이 제동이 걸려 있는 상태와 같다.

농업이야말로 수천 년간 인간의 최대 산업이었다. 그런데도 기술의 역사에서는 그것을 흔히 산업혁명의전사(史) 정도로만 연구해왔다. 그리하여 기계역학, 야금술, 에너지원은일급의 지위를 차지한 반면, 농업 기술은 반복되는 일상이든 변화이든(농업역시 비록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변화한다) 간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 P568

화폐경제는 어느 곳에서도, 심지어 16-17세기, 나아가 18세기의 프랑스와같은 곳에서도 결코 완성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화폐는 단지 일부 지역과 일부 분야에만 파고들어갔다. 화폐는 그 자체로서보다는 그것이 가져온 것 때 - P579

문에 새로운 것이다. 화폐가 가지고 온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의 가격마저 급격하게 변동시키고, 인간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자기 자신도, 관례도, 인간의 오래된 가치도 무시하게 되는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그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되고, 인간 자신이
"사물"이 된다. - P580

도시는 경제팽창의 원인인 동시에 그팽창에 의해서 창출된다. 그러나 도시가 모든 종류의 경제팽창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게임을 이끌어가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어느 관찰 장소보다 도시에서 이 게임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 P646

대도시는 근대국가를 만들었고 근대국가는 대도시를 만들었다. 전국 시장은 대도시의 압력 밑에서 만들어졌고 국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도시는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그리고 유럽에서 매일같이 다양한 물감을 섞고 있는 근대문명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역사가에게는 대도시가 무엇보다도 유럽과 다른 대륙의 진화에 - P747

대한 대단히 훌륭한 시약 역할을 한다. 그 시약에 의한 검사 결과를 잘 해석하면 물질문명의 전체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을 끌어내게 되고 그 역사의 통상적인 한계를 넘게 된다. - P748

대도시는 그 하나만으로 측정해서는 안 된다. 대도시는 도시체제 전체 총량속에 들어 있다. 대도시는 전체 도시체제를 활성화하고 전체 도시체제는 대도시를 규정한다. 18세기 말에 점진적인 도시화가 정착되어갔고 그것은 다음 세기에 더욱 가속화했다. 런던과 파리의 외면을 넘어서, 하나의 예술,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부터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이행했다. 4분의 3 이상이 농촌인 앙시앵 레짐의 세계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고 쇠퇴한 것이다. 한편 대도시들만이 이 새로운 질서의 정착을 확고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대도시들이 이제 나타나게 되는 산업혁명에 구경꾼으로서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런던이 아니라 맨체스터, 버밍엄, 리즈, 글래스고, 그리고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소도시들이었다. - P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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