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많은 대화편에서 전개했던 이야기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가어렵다. 철학의 거의 모든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고, 대화편마다 다양한 주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게다가 그의 사유 자체가 계속 변모를겪어나갔으며, 때때로 모순된 이야기들까지 나타난다. 그럼에도 그의 대화편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그래서 그의 사유 전반을 꿰고 있다고 생각되는 테마가 존재한다. 바로 ‘이데아론‘이다. 이데아론이라는플라톤의 존재론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사유를 비로소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P252
플라톤 자신은 그가 "형상(相)"(‘idea‘ 또는 ‘eidos‘라는 말을 썼다)이라 부른 이런 존재의 차원이 실재한다는 가설을 제시했으며, 더 중요하게는 그러한 차원이 우리가 감각으로 확인하는 현실적차원보다 더 실재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후에 등장하는 이런 유형의생각들 모두에 ‘플라톤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감각을 넘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이성‘의 존재와 이성의 파악 대상인 ‘본질‘의 실재성을 믿는 각종 유형의 철학들은 모두 플라톤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 플라톤은 "이데아들이 존재한다"고 응했고(본질주의 존재론), "존재한다 해도 알 수가 없다"에 "이성이 알 수 있다"고 응했으며(합리주의 인식론), "알 수 있다 해도 전달할수가 없다"에 "우리 모두는 이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응한 것이다(보편주의 윤리학). 플라톤이 최초의 위대한 ‘철학 체계‘를 세웠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뜻한다. 이후에 전개되는 서양 철학사에서 누구도 이 플라톤적 울림에 귀를 막을 수가 없었다. - P254
플라톤 철학 전체를 관류하는 문제의식은 ‘가짜‘에 대한 경계심과 그반면으로서 진짜를 가려내려는 열정이었다. 그의 사유는 가짜가 판을치는 그리고 오히려 진짜는 핍박받는 현실에 대한 의구심과 환멸에서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유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려는, 사물들에 상이한 존재론적 위상을 부여함으로써, 달리 말해 사물들을 존재론적 위계(ontological hierarchy)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진품을 가려내려는 열망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의 사유 전체는 모방(‘미메시스‘) 개념에 의해 추동되고 있으며, 모든 구별, 평가의 기준으로서 제시된 것이 바로 이데아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데아를 얼마나 잘 모방하고 있는가가 그 사물의 존재론적 위상을 판별할 수 있게해주는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보기에 사람들이 사물들의 실재, 진상(眞相)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감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 P341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으로 학문을 분류했으며 그 각각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비로소 ‘학문의 체계‘를 만들어냈다. 그가 분류한 학문 체계는 그 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많은 변이를 겪게 되지만 그 근본 구도는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학문을 분류한 후 그 분야 하나하나에 대해 저작을 썼다. 그래서 그의 저작들의 제목(또는 관련어) 자체가 바로 그 학문 분야의 이름이 되었고, 그의 학문 체계가 바로 학문의 체계가 되었다. - P353
사유의역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지성과 논리를 넘어선다는 상당수의 시도들이 진정한 철학적 도약을 이루기보다는 반지성주의적 폐해들로 흐르곤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한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잘 보여주었듯이 이성/지성은 그 한계에 갇힐 때 얄궂게도 비이성적/비합리적인 폭력으로 흐를 수 있다. 때문에, 앙드레 랄랑드가 특히 강조했듯이, 진정한 이성/지성은 항상 스스로의 한계를 비판하고 초월해가는 이성/지성이어야 한다. 자체의 한계에 갇힌 이성도 또 그것을 빗나간 방식으로 초월하려 하는 반(反) 이성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은 이 모든 문제들의 중심축이다. 이 텍스트들이야말로 한편으로 기성 사유의 한계들을 돌파해나가려는 진지한시도들이 출발해야 할 지점이고, 또 온갖 형태의 반지성주의적 사조들을 그것으로 데려와 보어야할 지점일 것이다. - P396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질료 및 시간과 떼어서는 의미를 상실하는, 플라톤의 형상과 성격을 달리하는 실체이다. 그러나 현실태로서의 형상이 잠재태로서의 질료를 이끌어가는 목적론적 구도는 그가 결국 플라톤을 잇고 있다는 점을 다시한 번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형상과 질료가 오로지 형식적으로만 구분되는 이원적 일원의 세계이며, 질료의 잠재성을 형상이 이끌어가는 목적론적 세계이다. 그리고 이런 존재론은 무엇보다 생명체들의세계에서 두드러지게 확인된다. 그의 존재론은 근본적으로는 플라톤을잇고 있지만, 보다 경험주의적이고 유기체주의적인 색채를 통해서 새롭게 재구성된 플라톤주의인 것이다. - P440
인간의 인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이 물음은 곧 오로지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식물에게도 다른 동물에게도 없는 것, 인간에게만 있는 것, 그것은 곧 이성(‘로고스‘)이다. 인간의 핵심적인 능력은 곧 이성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적 맥락에서 본다면 인간이 그이성을 현실적으로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성 또는 이성을갖춘 영혼이야말로 인간의 아레테이며 인간의 아레테를 발휘하는 것이행복이라면, 행복이란 결국 "이성을 발휘하는 실천적 삶", "이성에 따른영혼의 활동", "인간다움/인간적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최고선/행복이란 가장 인간다운 것 즉 이성에따라 실천하는 삶이다. - P447
플라톤에게 당대 현실은 어떻게든 극복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BC 399년)을 전후한 그리스의 상황은 그가 꿈꾸었던이데아의 차원과는 대극에 있는 현실이었다. 그에게 이데아란 이 현실을그쪽으로 변화시켜가야 할 방향/목적이었고 현실의 타락을 비추어주는시금석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상은 현실의 사물들에 내재해 있는 것이고, 그것들을 좀더 완성된 형태로 끌어주는 동력이었다. 그리스 문명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는 아테네에서 ‘이방인‘이었다. 때문에 그 자신 인생에서 몇 차례의 굴곡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현실을 긍정하면서 거기에 보다 높은완성도를 부여하려는 안온(安穩)한 눈길이 존재한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윤리학이 매우 세련되고 균형 잡힌 사유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정치학은 당대에 새롭게 도래하던 기운(氣運)들에 무척이나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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