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성서》에 나타나는 부정(不淨)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흐름으로나누어진다. 첫번째는 로버트슨 스미스(《셈족 종교에 관한 강의》, 1889)의 해석으로서, 부정이란 신의 뜻에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성서》의 부정을 운명적인 의지에 복종하는 유대 유일 신앙에 나타나는 내면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다.
바루크 A. 레빈‘에 따른 또 하나의 해석은 부정은 성스러움을 위협하는 악마적인 힘의 지표이다. 그에게 부정함은 성스러움과 독립해서 작용하는 것으로서 악의 정신의 자율적인 힘과 같은 것이다. - P143

인류학자 더글러스는 관찰 대상이 되는 사회를 연구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사회 질서를 발견하게 된다. 반면 종교사가 노이스너는,히브리 유일 신앙의 기념비적인 혁명으로 만들어진 율법으로 정/부정의 대립을 제시하고, 이 율법은 자체로도 충분히 고립된 것으로 축복받은 질서인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가-기호학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의식적인 부정을 어느 선까지 분석할 수 있을까 아는 데 있다. 이때 종교사가(노이스너)는 재빨리 멈추어 선다. 반면 인류학자(더글러스)는, 자연의
‘혐오스러움‘ 에 바탕을 둔 것은 문화적으로 부정하다는 사실 앞에 그 둘을 연계시킴으로써 전진한다. 그 자체로 ‘혐오스럽다는 것은, 주어진 상징 체계라는 고유한 계급화의 질서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된다. 왜 상징 체계에는 계급 체계가 있는데 다른 것에는 없는가? - P145

정/부정의 배치는 유대교가 스스로를 정립하기 위해 이교도와 그들의 모성 숭배적인제사 의식에 대항하여 치러야 했던 치열한 싸움의 증언이다. 정/부정의 배치는 또한 각 개인의 생활 속에서도 주체가 스스로 분리하는 투쟁을 종결한다. 말하자면 말하는 주체나 법칙의 주체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역사를 따라 내내 벌여야 하는 투쟁을종결짓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를 구획짓는 정/부정의 대립이라는 ‘물질적인‘ 의미소는 원초의 물질적인 관습을 다시 취하는 신성한 금지의 은유뿐만 아니라, 동일성이라는 상징적법칙의 탄생에 대한 주체의 경제(체제)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이기도 한 것이다. - P148

《성서》에서 말의 논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살생치 못하도록 금하는 것과 공외연적인 인간과 신의 차이에 관한 논리에 근거한다. J. 솔레르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성서》에서의 말의 논리는 <신명기> 제14장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육식 동물을 먹지 않도록 하는 논리의 장을 구축하는 것과 관련된다. 육식 생활은 하지만 육식 동물이나 맹금류와 동화되지 않고, 살생 행위도 예방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 한 가지의 판별 기준만이 남게 된다. 즉 새김질하는 초식 동물만을 먹는 것이다. - P153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아이를 낳으면, "제8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陽皮)를 벨 것이다."(<레위기> 제12장 3절)이 할례 의식은부정을 분리시키는 동시에,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불결함을분리하는 수단인 것이다. 할례는 희생 제의를 대신하는데, 그것은단순히 교체된다라고만은 할 수 없고 희생 제의와 동등한 것, 바꾸어 말하면 신과의 계약 증거가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할례는 음식물에 대한 터부와 같은 계열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그것은 분리를 각인하는 동시에, 그 속에 분리의 흔적이 나타나는 희생 제의를 절약한다. - P155

어머니의 육체나 출산을 상기시키는 것은, 어머니 내부의 물질들이 육체를 분리시키려는 난폭한 축출 행위로 인해 끌어내어진, 태어나는 육체에 다름 아닌 출생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그런데 피부에는이 물질들의 흔적이 계속되는 것 같다. 그 박해하고 위협하는 물질의 흔적들을 가로질러 더 이상 영양을 공급하지 않고 피해만을주며 조여 오는 태반 속에서 태어난 육체의 환상은, 문둥병의 현실과 만난다. 한 발자국 더, 우리는 그녀와 더불어 전(前)오이디푸스기의 동일화 과정이 참을 수 없는 것이 되는 어머니를 다시 한번 힘차게 밀어낸다. - P157

《성서》에 나타나는 부정은, 상징체계라는 조건이나 계약에 대해서 분리될 수 없는 내재성이다. 따라서 이전의 텍스트에서의 음식물에 대한 혐오를 이후의 예언자들이 변화시켰다고 해도, 《성서》에 나타나는 부정이 ‘사악한 권력의현실 형태‘21)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실 분리하는 요소를 지닌 신성한 성전과 말씀 자체가, 예언자들에게는 고유함이나 자기 동일성과 뗄래야 뗄 수 없이 병행하는 ㅡ 내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부정인 것이다. - P164

상징적이거나 또는 사회적인 계약으로서의희생 제의에 대한 개념을 추월하라고 꼬드기는 것은, 바로 혐오의체계를 강조하는 《성서》 자체라는 점이다. "살생하지 말라"가 아니라 금지나 계율을 준수하지 않으면 어떠한 희생(犧牲)도 드릴 수없는 것이다. 〈레위기 > 제11장은 음식물에 관한 모든 터부의 규칙을 통해 이같은 견해를 보다 분명히 한다. 그 결과 성스러움과 정결의 법칙에 따라야만 희생 제의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 법칙이란 무엇인가? 속인인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희생 제의를 제약하는 것이다. 법칙이란, 말하자면 죽이려는 욕망을 가장한 것, 하나의 분류 체계에 불과하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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