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프랑스군 수송 선단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궤벤과 그동료 전함이 1912년 진수 후에 지중해를 순항하도록 파견된 한 가지 이유였다. 마지막 순간 독일은 그들이 해야 할 보다 중요한 역할을 발견했다. 8월 3일 독일군이 머뭇거리는 터키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도록 가능한 모든 압력을 가할 필요를 느꼈을 때, 티르피츠 제독은 수숀 제독에게콘스탄티노플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 P249

한동안의 격렬한 논쟁이 거듭된 끝에 한 장관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독일이 이 전함들을 우리에게 팔 수는 없을까요? 그들의 도착을 계약에 의한 인도로 간주할 수는 없을까요?"
모두들 이 딜레마를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척의 터키 전함을 압류한 영국의 독선적인 정의에도 대항할 수 있는 이 훌륭한 생각에 기뻐했다. 독일이 합의하자 이 매매는 각국의 외교관들에게 공표되었고 이어서 바로 야우스(Jawus)와 미딜리(Midilli)로 명칭이 바뀐 궤벤과 브레슬라우는 승무원들이 터키식 모자를 쓰고 터키 국기를 게양한 채 군중들의 열광 속에서 술탄의 사열을 받았다. 마치 자신들이 도둑 맞은 두 척군함을 대신하여 귀신이 보내 준 것 같은 갑작스러운 독일 전함의현은 대중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독일에 대한 인기를 치솟게해 주었다. - P274

바깥 세상에서 보기에 리에쥬를 공격 중인 독일군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타임』지 종군기자의 말처럼 "아주 깨끗하게 박살 난 것" 같았다. 그 당시 잠깐 동안은 이 말이 거의 맞았다. "잠자는 양을 아주 손쉽게 제압할 것으로 기대하며 허풍을 떨었던 독일군은 요새를 강습 점령하는 것에 실패했다. 8월 9일 이후 독일군은 공격을 멈추고, 비록 병력은 아니었지만 지원군을 기다리게 되었다. 공성용 대포를 기다렸던 것이다. - P304

리에쥬의 의원인 셀레스탱 뎀블롱은 그때 쌩 피에르(St. Pierre) 광장에 있다가 공성용 대포가 광장의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대포를 구성하는 부품들이 너무 거대하여 우리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괴물은두 부분으로 나뉘어 다가왔으며 36마리의 말들이 끌었다. 포장된 도로가 들썩거렸다. 군중들은 이 엄청난 기계장치의 출현에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천천히 쌩 랑베르(St. Lambert) 광장을 지나 테아트르(Théâtre) 광장으로 들어간 다음 호기심에 가득 찬 군중들을 끌어 모으면서 소브니에르(Sauveniere) 대로와 아브루아(Avroy) 대로를 따라 느릿느릿 무겁게 지나갔다. 한니발의 코끼리들도 로마인들을 이보다 더놀라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과 동행하는 병사들은 거의 종교적인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절도있게 행진했다. 그 대포들은 악마였다..…그것은 아브루아 공원에 조심스럽게 설치된 다음 정밀하게 조준되었다.
그리고 나서 엄청난 폭발이 있었는데, 군중들은 뒤로 나가떨어졌고, 땅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으며, 가까운 곳의 창문은 모두 박살이 났다." - P321

영국해군의 막중한 임무를 미리 예견하고 지중해 함대에 대해 궤벤을도모하면서도 "우세한 적과의 교전을 피하라고 명령했던 처칠처럼 키치너는 자신이 만들어야 할 백만 대군을 내다보며 BEF에 대해 상호 조화되기 어려운 정책과 임무를 부여하였다.

프랑스군의공격 위주 전략에 대해 비난을 반영하고 있는 키치너의 명령은 만일 프랑스군이 대규모로 동원되지 않은 채 영국군이 "적의 공격에 과도하게노출될" 수도 있는 그 어떤 "공격 작전"에 참여하도록 요청을 받는다면존 경은 우선 본국 정부와 협의해야 하며, "경의 지휘권은 전적으로 독립적인 것이며, 경은 어떠한 경우라도 동맹국 장군의 명령에 어떤 의미로도 통제 받지 않음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 P338

8월 20일 마침내 프랑스는 총공격에 임하게 된다. 허작은 상브르에 도착했으며 영국군도 그와 이웃한 위치에 있었다. 그동안 우왕좌왕하던 존 프렌치 경도 마침내 죠프르에게 다음날이면 작전에 임할 수 있 - P374

도록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로렌에서는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루프레흐트의 반격이 엄청난 위력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카스텔노의 제2군은 죠르가 일부 군단을 벨기에 전선으로 이동 배치함으로써 균형을 잃고 후퇴 중이며, 듀바이도 혹독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보고였다. 알자스에서는 현저하게 줄어든 독일군을 상대로 포장군이 물루즈와 그 주변 지역을 전부 재탈환했지만 이제 허작 군이 상브르로 이동하면서 중앙공격에 투입될 전력이 빠져나가게 되어 포의 군대가 그 자리를 대신 맡아야만 했다. 죠프르의 어쩔 수 없는 입장 때문에 포의 병력을 철수시키라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알자스마저 가장 큰제물로써 플랜17의 제단에 바쳐지게 된 것이다. - P375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실제로 전투가 벌어진 곳은 전체 서부전선 중 네 군데였으나, 역사는 이들을 묶어 국경의 전투(the Battle of the Frontiers)라부른다. 8월 14일부터 우측의 로렌에서 이미 시작된 각각의 전투 결과가전 전선에 알려지게 되면서 로렌의 소식이 아르덴느에, 아르덴느는 다시 샤를루와 전투로 불리는 상브르와 뫼즈에, 그리고 샤를루와는 몽에영향을 미치게 된다. - P377

8월 24일 독일군은 거대한 자신감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들 앞에는 오로지 패퇴한 적만 보였고 슐리펜의 천재성이 입증되었으며, 결정적인 승리가 독일군의 손 안에 잡힌 듯 보였다. 프랑스에서 프앙카레 대통령이 일기를 적었다. "아군은 후퇴하고 적이 침입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주간의 환상은 그토록 컸던 것이다. 이제 프랑스의 미래는 국가적인 저항 능력에 달려 있다."
생의 약진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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