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관: 고려와 조선 초기에 있었던 지방제도의 한 형태로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대읍 혹은 그 곳의 수령을 지칭.

몽수: 고려시대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쓰던 쓰개.

최치원: 고려에 적극 동참
최승우: 후백제에 적극 동참
최언위: 최언위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유학자이고 문신 겸 향가 작가이자 한시 시인이며 서예가. 고려 초기 행정 개혁에 도움
최승로: 시무28조의 주인공. 고려 초기 행정 개혁에 도움
최은함: 최승로의 아들. 고려 초기 행정 개혁에 도움

허균은 ‘호민론‘ (豪民論)에서, 호민은 난세에 세상 돌아가는꼴을 엿보고 있다가 기회가 왔다고 판단되면 무리를 모아 변혁을 위해 떨쳐 일어난다고 하였다. 왕건이 바로 우리 역사에나타난 호민의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 P29

왕건은 궁예를 대신하여 연이어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였다.
특히 세력 확충의 요지이자 교두보였던 후백제 지역의 나주공략에 여러 차례 나선 일은 그의 세력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 P30

계기가 되었다. 그는 나주를 자기 세력권으로 만들고 그곳을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왕건은 많은 전공을 올려913년 시중(侍中)이라는 최고 관직에 올랐다. 궁예는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고 모든 정사를 맡겼다. - P31

처음왕위에 올랐을 때 왕건은 신하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일렀다.
여러 길목의 도둑들이 짐이 즉위하였다는 말을 듣고 혹시틈을 타서 변방의 근심을 만들까 염려하였도다. 그래서 사자를 나누어 보내 예물을 후하게 건네주고 언사를 겸손하게낮추어 호의를 보였다. 과연 귀화하거나 투항하는 자들이많았는데 오직 진훤만이 교빙(交聘)하지 않았다. (『고려사』세가 권1)여기에서 말하는 도둑들은 각기 세력을 이루어 곳곳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농민봉기 집단일 것이다. 이와 같이 왕건은농민봉기세력을 끌어들이는 데 신경을 쓰는 한편, 일정한 토지를 확보하고 지방 권력을 쥐고 있는 성주(城主)나 장군으로이루어진 호족세력에 특히 주목하였다. 그는 호족을 무마하고 끌어들이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 P36

왕건의 25명의 아들 중 왕이 되었거나 승려가 된 자를 제외하고 11명은 태자로 불리었으며, 나머지 7명은 군(君)으로 불렸다.
태자는 왕위 계승자임을 의미하므로 11명 모두 왕위 계승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호족의 외손들이 왕위 계승자가 될 수있었다는 것은 정략적인 성공을 뜻한다. 일반 왕자들에게 붙여졌던 태자라는 호칭은 965년 왕건의 손자인 경종)가 광종의 유일한 태자로 책봉된 뒤 사라지고, 그뒤부터는 왕위계승권자 한 명에게만 적용되었다. - P43

고려 초기의 토성분정과 본관제도는 우리나라 성씨제도의근본이 되었다. 귀족들은 성과 본관을 하사받아 문벌가로 행세하였으며, 가문을 빛내기 위해 조상을 잘 알 수도 없는 중국의 성씨에 혈통을 끌어내기도 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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