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그들에 대한 공격을계속하니, 마침내 성채에 있던 사람들이 궁지에 몰렸다. 성채의 해자는생물·무생물들로 땅과 같이 평평해졌고, 부하라 징용대의 시체]로 말미암아 높아졌다. 성을 장악하고 성채에 불을 질렀다. 자신의 발을 흙에 묻히지도 않던 지체 높은 당대의 칸들과 귀족들, 술탄을 위해 일하던사람들은 비참한 포로가 되어 소멸의 바다에 익사했다. 캉클리인들 가운데 채찍보다 키가 더 큰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다. 3만 명 이상이 죽음을 당했고 부녀자들은 포로로 끌려 갔다. 반항자들이 시내에서 일소되자 성벽을 부수어] 지표면과 같이 만들고, 도시민 모두를 벌판의 기도장(namáz-gah)으로 내몰아 젊은이들을 징용대로 선발해 사마르칸트와 다부시야로 끌고 갔다. - P340

도시와 성채를 폐허나 마찬가지로 만들고 수많은 아미르와 병사들을죽인 뒤, 다음날 [108r] 79v」남은 사람들의 수를 헤아렸다. 그 무리들가운데 3만 명을 職人이라는 명목으로 정하여 아들. 카툰아미르들에게나누어 주었고, 그와 같은 숫자를 징용대로 정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으나, 생명을 건진 대가로 20만 디나르가 지정 - P343

되었다. 사마르칸트에서 관직을 지닌 고관들 가운데 씨카트 알 물크(Thiqat al-Mulk)와 아미르 아미드 부주르그(Amir ‘Amid Buzurg)를 지명해 그것을 징수하도록 하고, 하나를 임명했다. 징용대 가운데 일부는 후라산으로 데리고 가고, 일부는 아들들과 함께 호라즘 쪽으로 보냈다. 그 뒤 몇 차례 더 징용대를 요구했다. 그 징용대들 가운데 목숨을 보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런 까닭으로 그 지방은 완전히 황폐해졌다.
칭기스칸은 그해 여름과 가을을 사마르칸트 주변에서 보냈다. - P344

"아미르들과 대인들과 많은 백성들은 위대한 신께서 해가 뜨는 곳에서 지는 곳까지 지상의 모든 곳을 내게 주었다는 것은 알라! 누구라도복속하면 그 자신과 처자식들과 권속들에게는 자비가 있을 것이나, 누구라도 속하지 않고 적대와 저항을 앞세운다면 그는 처자식들과 권속들과 함께 파멸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이런 내용의 서한을 주고 진군했다.
50)제베는 주베인 (Juvain) 길을 따라갔고, 수베테이는 ‘제왕의 길‘
(shâh-rah)을 따라 잠(Jam)을 거쳐 투스로 갔다. 복속하는 곳이면 어디든 살려 두었고, 반항하는 사람은 누구나 없애 버렸다. - P349

사신이 도착하여 칙령을 전달하자 톨루이 칸은 명령에 따라 출정했다. 그는 수완과 지모를 발휘하여 매일 형제들을 한 사람씩 찾아가 친절을 베풀며 아양을 부렸고, 훌륭한 지략을통해 그들 사이를 화해시켰다. 또한 그는 임무에 적합한 사무 처리를 통해 군무를 정비하고 법령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exa그렇게 한 뒤 병사들을 모두 전투에 투입시켰고, [몽골군은) 그날로깃발을 보루 위에 꽂고 시내로 진입했다. 나프타가 담긴 병에 불을 붙여[시내의] 동리들에 던졌다. 도시 주민들은 골목으로 몸을 숨겼고, 골목길과 동리에서는 전투가 벌어졌다. 몽골인들은 격렬하게 싸워 동리를하나씩, 또 건물을 하나씩 장악하고 무너뜨리고 태웠으며, 이런 식으로해서 일주일 만에 도시 전체를 점령했다. - P358

그곳에 도착한 칭기스칸은 사신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복속하고 성벽과 성채를 허물라고 요구했다. 그곳 주민들은 성벽의 반이 아무다리아에 접해 있는 성채의 견고함에 의지하여, 또한 자신들의 용맹과 위세를 자신하여 복속하기를 거부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몽골군은] 11일째 되던 날 도시의 성문을 힘으로 열고 사람들을 모두 벌판으로 내몰아, 일정한 수를 병사들에게 분배한 뒤 모두를 죽여 버렸다. 어떤 노파는 [병사들에게] "나를 죽이지 않으면 진주를 주겠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찾으려고 하자 "삼켜 버렸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즉시 그녀의 배를 갈라서 그 진주를 꺼냈고, 이런 까닭으로 죽은 사람들 모두의 배를 갈랐다. - P360

믿을 만한 역사서에 따르면, 술탄은 [113v] 「85r」 〔적과]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먼저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과 비빈들이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물에 빠뜨려 죽이고, 재물들도 물에 던져버린 뒤 물에 뛰어들어 건너갔다고 한다. 술탄의 병사들은 모두 죽음을당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의 다른 아들들은 젖먹이에 이르기까지모두 살해되었고, 후궁에 있던 어린 여자들도 약탈해 갔다고 한다. 술탄의 재물들은 대부분 금과 은과 보석들이었기 때문에 술탄은] 그 모두를인더스 강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했었다. 그 뒤 칭기스칸은 잠수부들에게 명령하여 강으로 들어가서 가능한 것들을 모두 건져 올리라고 했다.
그들은 전리품을 모은 뒤 당시의 관습에 따라 진영을 쳤다. - P371

열한 살이었던 쿠빌라이 카안과 아홉 살이었 - P379

던 훌레구 칸이 마중 나왔다. 마침 그때 나이만 지방 변경의 아이만 후이(Aîmân Hî)-일리(Hila)‘15) 강 건너편에 있는 이밀 쿠친(imil Qúchin)근처이며 위구르 지방에 가까웠다에서 쿠빌라이 카안은 토끼를 잡고훌레구 칸은 영양을 잡았다. 몽골인들은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사냥을 해서 [짐승을 잡으면 그의 엄지손가락에 살코기와 비계를 발라 주는 것,
즉 ‘자미시‘ (jamishi)116)를 해주는 관습이 있었다. 칭기스칸은 몸소 자미시‘를 해주었는데, 쿠빌라이 카안은 칭기스칸의 엄지손가락을 아주 부드럽게 잡았고 훌레구 칸은 강하게 잡았다. 칭기스칸은 "이놈(gatar)이내 손가락을 부러뜨리겠네!"라고 말했다. - P380

[칭기스칸은]노카이 일‘, 즉 개해-623 1126)년에 해당초봄에옹군 달란 쿠둑(Ongún129) Tâlân Qudaq)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상황에대해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죽음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왕자들 가운데 주치 카사르의 아들인 이게30)가있었는데, 그에게 "내 아들들인 우구데이와 톨루이는 멀리에 있는가가까이에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들은 자기 軍陣(jerge-i lashkar) 안에 있었다. [이숭게는] "2~3파르상 정도의 거리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칭기스칸은 즉시 사람을 보내 그들을 찾아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식사를 할 때 그는 아미르들과 임석한 사람들에게 "내 아들들과 상의하고 밀담을 나누어야 할 것이 있어, 잠시 조용히 [아들들과]비밀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그 문제에 관해 논의했으면 좋겠다. 우리가따로 있을 수 있도록 자네들은 잠시 물러나 주겠는가?"라고 말했다. - P383

"오, 아들들이여! 내가 세상을 하직하고 마지막 여행을 할 때가 가까워 왔음을 알라! 나는 창조주의 힘과 하늘의 도움으로, 그 중심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든 1년이나 걸리는 거리인 광대한 왕국을 너희 자식들을위해 정복하여 완성시켰노라. 이제 나의 遺志는 너희들이 적을 물리치고 친구를 치켜세워 주며, 한마음 한뜻이 되어 편안하고 풍요롭게 인생을 보내고 왕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우구데이 카안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유촉을 모두 마친 뒤, 이렇게 충고했다.
"너희들은 각자의 왕국과 울루스로 가라. 왜냐하면 왕국이 소홀히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집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으며, 나의 명성과 영예를 위해 저승으로] 가겠노라. 너희들은 내가 죽은 뒤 법령(yásáq)를 바꾸지 말라." - P384

돼지해가을 가운뎃달 보름-624년 라마단(1227년 8~9월에 해당ㅡ에 그는보좌와 왕국을 명망 높은 후손들에게 남겨 주고 덧없는 세상을 떠났다. 아미르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이 사실을 은폐했다가 그 종족이밖으로 나오자 그들 모두를 죽인 뒤, 그의 관을 모시고 귀환했다. 그것을오르두들에 운반할 때까지 도중에 마주치는 모든 피조물들을 죽였다.
부근에 있던 왕자들과 카툰들과 아미르들이 모두 모여 장례를 치렀다. - P386

[한번은 칭기스칸이 사냥을 갔는데, 이 지방의 어떤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아래 멈추었는데, 그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찼다. 그는
"이곳은 내가 묻힐 만한 곳이다. 이를 잘 표시해 두어라!"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 장례를 치를 때 다시 [일화를 말하자, 왕 - P387

자들과 아미르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그곳을 선정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를 묻은 바로 그해에 그 평원에서 수많은 나무와 풀이 자라나, 지금은 울창한 숲이 되어 그 안을 지나갈 수도 없으며, 처음의 그 나무와그가 묻힌 곳을 다시는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禁區지기(gorigchi)들조차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 P388

칭기스칸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의 충고에 귀기울이지 않는 자식들, 형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동생들, 부인을 신뢰하지 않는 남편, 남편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부인, 며느리를 괴롭히는 시어머니, 시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 며느리,
어린애들을 보호(asrâmishi)하지 않는 어른들, 연장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연소자, 종들의 마음을 멀리하는 대인들, 외부인을 맞아 주지않는 사람, 나라의 백성들을 구휼하고 강화시켜 주지 않고 법령과 규범과 현명한 방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한 반목으로말미암아 도둑과 사기꾼과 반도와 불법자들이 창궐하고 그들은 노략질을 당할 것이다. 그들의 말과 가축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전쟁시] 선봉에 세워 타고 다니던 말들이 안식을 얻지 못해, 마침내 그 말들은 버려지고 쇠약해져 죽고 말 것이다. 이러한 종족은 혼란되고 우둔하다." - P426

"군대의 지휘관이 될 만한 사람은 스스로 배고픔과 갈증을 체험했기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행군할 때는 보조를 맞추어서 병사들이 배고픔이나 갈증을 느끼거나 가축들이 피로해지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너희들 가운데가장 약한 사람의 행보에 맞추어 행군하라!"는 속담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 P431

" [술은] 어떤 지식을 갖고 있고, 또 어떤 기술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것들을 빼앗아 버리고, 그가 가는 길이나 하는 일을 가로막아 버린다. [지식과 기술] 이 두 가지를 잃어버리는 것은 마치 음식과 산해진미 (shilan)를 불에 집어 넣고 물에 던져 버리는 것과 같다." - 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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