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이 옹 칸의 군대를 공격하여 그와 그의 아들을 패주시키자, 케레이트 종족들은 그에게 복속했고, 그는 그 나라와 울루스를 장악했다.
그해, 즉 ‘통쿠즈 일‘ -회력 599/1203)년에 해당한다―겨울에 테멘케헤레(Temân Kehere)180)라는 곳에서 사냥하고, 승전을 올리고 귀환하며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축복받은 자신의 오르두들에 도착했다. 그가 이처럼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군주의 대업이 그에게 확정되었고, 주변에서 종족들이 그에게 귀순해 들어왔다. 거대한 회의를 열고 크나큰 은총에 감사하면서 준엄하고 자비로운 법령들(yâsâqhâ)을 선포하고, 상서롭게 칸의 자리에 앉았다. - P226

‘쿨루카나 일‘, 즉 쥐해-600년 주마다 알 아히르(/1204년 2~3월에 시작의 시작부터 ‘모린 일‘,
즉 말해-606년 샤반(/1210년 1~2월에 시작-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7년 동안, 칭기스 칸의 역사.
그 마지막 해에 칭기스칸은 56살이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타양 칸과 전쟁을 했고 그를 죽였다. 9개의 하얀 발을가진 깃발을 세웠고, 그에게 ‘칭기스칸‘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여러 차례 탕구트로 출정했고, 메르키트의 군주인 톡타이, 타양 칸의 아들인 쿠쉴룩과의 전쟁에 몰두했으며, 위구르의 군주를 귀순하라고 소환했다. - P245

칭기스칸은 주치 카사르에게 "너는 ‘콜‘ (qôl), 즉 중군을 지휘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군대를 정열(yásámishi)시켰다. 자무카 세첸이 멀리서 칭기스 칸의 列을 보고는 누케르들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하기를,
"[나의] 의형제, 즉 칭기스칸의 대형과 전열은 남다르다. 나이만 종족은 송아지의 껍질조차 다른 사람에게 남겨 주지 않으니, 누가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겠는가?"라고 하면서, [타양 칸의 군대에서 떨어져 밖으로나가 전투에서 도망쳤다. - P248

코리 수바추는 아미르들에게 "만일 그에게 조금만이라도 인내심이 있다면 몸을움직이거나 대답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제 그가 죽는 것을 우리가 보기전에, 우리가 죽는 것을 그가 보도록 나가서 전투를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산기슭에서 내려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모두] 죽음을 당했다. 칭기스칸은 그들을 산 채로 손에 넣고자 했지만, 그들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죽음을 당했다. 이에 칭기스칸은 놀라며 그 단호함과 충성심에 탄복하면서 "저런 누케르들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밤이 되었을 때 타양 칸의 군대는 패배했고 칭기스칸은 그들을 추격했다. 패배한 사람들은 극도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험한 산지로 들어갔다. 나쿠 쿤(Naqu Qun)이라는 가파르고 거친산에서 밤중에 수많은 나이만 병사들이 미끄러지고 굴러떨어져 죽었다. - P249

상서로움과 축복으로 ‘파르스 일‘, 즉 호랑이해 - 회력 602년 라잡[/1206년 2~3월)에 시작가 찾아왔다. 초봄에 칭기스칸은 [91r]「62v」 9개의 다리를 지닌 흰 깃발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장엄하게 쿠릴타이를 열어, 축복을 받으며 보좌에 앉았다. 이 칭호를 정한 사람은 콩코탄 종족 출신인 뭉릭 에치게의 아들 쿠케추(Kôkechú)-텝 텡그리(Tep Tengri)라고도 부른다―였다. ‘칭‘의 뜻은 ‘강하고 단단하다‘는것이며, ‘칭기스‘는 그 복수형이다. 카라키타이 대군주들의 칭호인 구르칸이 강하고 위대하다‘는 뜻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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