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편

보르지킨은 ‘회색빛 눈‘이라는 뜻을 지녔다. 사실 이수게이 바하두르에게서 태어난 자식들과 오늘날까지 태어나는 그 일족의 자식들의 대부분은 회색빛 눈에황색 피부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알란 코아가 회임할 때 "사람의 모습을 한 빛이 밤에 내 눈 앞에 나타났다가 가버리는데, 그의 피부는황색이고 눈은 회색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소급된다. 그녀의 8대손인 이수게이 바하두르에게서 그 같은 징표가 다시 나타나자, 그들은 자기 자 - P78

식들이 군주의 징표를 지녔다고 한 알란 코아의 말이 바로 이것이라고했고,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말이 옳다는 증거이며 그런 일이 조만간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 P79

둘째 아들은 주치카사르(Jochi Qasar)였다. 주치는 이름이고, ‘카사르는 맹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며 거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의 어깨와 가슴이 어찌나 넓고 허리는 얼마나 잘록했는지, 옆으로 누워서 잘 때는 한 마리의 개가 그의 허리 밑으로 빠져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힘은 얼마나 센지 사람 하나를 두 손으로 잡아서 그 허리를 마치 나무로 만든 화살처럼 부러뜨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 자기 형인 칭기스 칸과 연합했으며, 한마음이었다. 비록 옹 칸과 전투할 때 그와 떨어지기도 했고,
여러 차례 그가 잘못을 범했다는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칭기스 칸은 나이만의 군주 타양 칸과 벌인 커다란 전투에서 카사르에게중군을 지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그 전투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런 까닭으로 칭기스칸은 그에게 은사를 내렸다. (칭기스칸은 여러 형제들과 조카들 중에서도 특히 그와 그의 자식들에게 형제와 왕자의 지위에 걸맞는 직책과 자리를 정해 주었다. 그래서 칭기스칸의 일족에 속하는 모든 숙부와 사촌들 가운데 오로지 주치 카사르의 일족만이 왕자들의 반열에 앉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로 되어 있다. - P84

옷치 노안은 몽골인들 중에서도 건물 짓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가는 곳마다 궁전(sari)과 전각(koshek)과 정원을 건설했다. 칭기스칸은 다른 형제들보다 특히 그를 더 아껴서 그 형들보다더 높은 자리에 앉혔고, 지금도 그의 자식들은 다른 두 형제의 자식들보다 더 높은 곳에 앉는다. 칭기스칸이 자식들에게 군대를 분배할 때 그에게 5천 명을 주었는데, 그 가운데 2천 명은 킬키누트 종족에 속하는 오로나르 종족에서 충원되었고, 1천 명은 베스트 종족에게서, 그리고 2천 명은 여러 종족들에게서 소집되었다. 그에게는 자식들이 많았지만 후계자는 타가차르 노안이었고, 그가 울루스와 많은 군대를 관할했다. 세대가흐르면서 이 5천 명은 더 많은 수의 중요한 군대가 되었다. 그가 있는 지방과 목지는 동북방으로 몽골리아의 가장 변두리에 있어 그 너머에는어떠한 몽골 종족도 살지 않았다. 그는 쿠빌라이 카안 휘하에서 항상 쿠릴타이에 참석하여 중대한 국사를 [60] 논의함으로써 매우 존경을 받았고 중요한 인물이었다. 아릭 부케와 쿠빌라이 카안이 대립할 때 쿠빌라이 카안은 그를 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전투에 보냈고, 그는 아릭 부케의 군대를 격파했다. 그 뒤 그는 쿠빌라이 카안의 칙령에 따라 항상 원정에 나섰고, 훌륭한 삶을 살다가 천수를 다했다. - P91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치른 전투의 대부분은 타타르 종족과 벌인것이었다. 그들은 당시 투르크 종족들 가운데 가장 유명했고, 다른 종족에 비해 더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카불 칸 부인의 형제였던 사인테킨이 사망하고 그의 일족이 타타르의 무당 차라칼을 살해한 사건이있은 뒤부터 카불 칸의 자식들과 타타르 종족 사이에 끊임없이 분란이 일어나 항상 서로 전투를 벌이며 싸웠다. 마침내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그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패배시켰다. 그 뒤 칭기스칸이 그 종족전체와 일부 다른 종족들을 자신의 예속민과 포로로 삼았다. 이는 오늘날 투르크 종족들 전부가 칭기스칸 일족의 속민이자 군대가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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