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들은 정전(停戰)의 성립을 폭격의 공포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계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북한 사회는 전 사회적 역량을 전쟁 이전 수준으로 산업 시설을 복구, 재건하는 데 집중했고, 모든 직능 분야에서 체제의 요구에 호응하도록 독려했다. 당과 각종 직능단체들은 산하 기관지와 다양한 책자를 통해 전후복구 시책들을 전파하며 조직화에 나섰다. 공장과 농촌과 도시의 주민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족을 잃은 상처를 딛고 토굴과 방공호를 벗어나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가장 빠르게 호응한 북한의 문학예술은 시와 판화와 음악이었다.
‘문학예술‘에서 재현한 사회와 개인의 일상은 신문과 주요 잡지들에 게재된 ‘체제의 외침‘에 호응했다. 그러나 정전 직후를 다룬 소설 정전(正典)의 서사에는 당원과 작업반장, 직공장과 자발적으로 호응하는 동원체제의 수행자들만 등장하지 않는다. 빛나는 전망」과 「직맹반장」의 여성 주인공들은 죽음과결핍과 상처로 얼룩진 정전 직후의 현실에서 남성 가부장적 존재들과 달리 상처난 자들의 사연을 경청하고 낮은 목소리로 설득하며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실행하는 주체들이다. 이들은 체제의 구호와 정책을 관철시키는 수행자이기도 하지만 동원체제의 강한 압력을 인간화하여 상처를 보듬는 일상적 개인들이다. 이들 여성 주인공은 ‘미적 전제‘에 한정되지 않고 ‘전쟁의 남성적 폭력성‘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존재에 가깝다. - P44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친선 및 ‘사회주의 건설‘은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었으며, 전후복구의 선행 경험을 지닌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원조나 협력의 원천으로서 적극적인 교류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 북한의 동유럽 기행문·118729번역문학은 "혁명적 전통"에서 감지되는 동질성과 언어가 다르고 생김생김이 다르고 습관이 다른 이질성 사이에서 요동하며 상호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가시화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즉 북한 문학자들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이질성을 넘어 국제주의적 연대를 구현하기 위해, 전쟁·혁명의공통 경험을 환기하거나 소련이라는 이념적·문학적·산업적 보편항의 매개를필요로 하는 면모를 보였다. 이러한 조선-동유럽 간 동질성의 모색은 동일한창작 주제를 공유하는 사회주의 세계문학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전후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일(一) 국가의 시대적 과업을 세계라는 보편적 공간 내에자리매김하기 위한 목적하에 수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개별 작가들의 관점은 1955년 12월의 반소련 캠페인 이후소련이라는 보편항으로 포용될 수 없는 상호간의 이질성을 발견하거나, 개인 - P79

의 생각과 내면을 부각시킴으로써 가족애·낭만적 사랑 등의 ‘생활 감정‘을 새로운 보편항으로 발견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이질성이나 ‘보통사람‘의 삶에 대한 주목은 북한 문학자들이 소련이라는 보편항의 중재나 이념 · 국가라는 거시적 프레임의 매개에 매몰되지 않은 채, 동유럽의 다채로운인민들과 마주할 수 있는 위치에 근접했음을 의미한다. - P80

비코는 "사회 세계란 인간이 만든 것이 확실하고 따라서 그 원리는 인간 정신이 표출되는 여러 양태 속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전제한다. "어떤 사물을 만든 사람이 그 사물에 대해 말할 때보다 더 확실한 역사는 있을 수 없다"라는 인식론의 논리이다. 비코에게 인간의 권위는 의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 있다.
인간은 아무리 약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덕성을 만들어낼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역사적인 인간본성의 개념을 제기한 비코는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동일시하였고 인간의 본성을 역사의 기능으로 생각하였"다." 그에게 철학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철학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기를 개발해가는 과정의 철학(philosophy of becoming)"이었다. - P96

이야기에서 공간이 기능하는 방식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배경이며 다른 하나는 행동이 실현되는 장소이다. 공간의 모습은 서사의 주인공이나 화자가 묘사하는 텍스트에서 상세하게 구체화한다. 인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공간은 전적으로 배경에 그대로 남게 된다. 공간을 ‘주제‘로하는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공간 그 자체는 화자가 제시하는 대상에 해당한다. 037이산가족들이 기다린 시간과 공간은 자신들의 존재 가능성이 거기에 있기때문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평양으로 가려고 한 이산가족들은 그들의 행위가 실현되는 장소에서 과거이자 미래로 떠나는 여행자였다. 부모와 형제자매, 자녀를 만날 것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이를 실천하는 장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듯이 그들은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 닫힌 공간을 바라봐야만 했다. 잠시 열린 공간은 미래의 시간을 지워버렸다. - P99

1960년대 초부터 브라질을 시작으로 남미 지역에 이민이 활성화되었다. 그들은 사연 따라 현지에 정착해 한인사회를 조성하였고, 이북 출신 이민자들은 해외동포이산가족찾기회를 거쳐 평양의 가족을 찾고 만났다.
노동당이 꾀한 것이 무엇이었든지, 분단사회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낸것이 한반도 바깥에 있는 이산가족들이다.
이북의 가족을 향한 자유의지는 지구반대편에서 국경을 넘어서는 강력한힘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남한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자신들의존재를 확인하였다. 남미의 시공간과 북한을 방문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이후의 행위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해주었다. 존엄성은 이산가족을 보면 세계로 이끌었고 그들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내면의 자유를 느꼈다. 분단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이념의 자기장으로부터 벗어난 - P115

공간에서 그들은 고향 땅과 부모 형제, 자식을 향한 자유의지를 실천하였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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