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세상의 절반은 여성

살찐 사람이건 마른 사람이건, 풍만한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우리의 육체는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못하지 않은, 무지개같이 다양한스펙트럼 속에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면 절세 미인과 유방절제 수술을 받은 여성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고 모두들 나름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매체가 만들어낸 여성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전통적인 성역할과는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남녀-예를 들어 용접하는 여성과 아기 기저귀를 가는 남성의 사진을 아이들에게보여주고 나서 몇 주가 지나면, 아이들은 역할을 바꾸어 기억하고 있음이밝혀졌다. 그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현실 속에서 다양한 여성의모습을 볼 수 있어야만 온전한 여성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일차원적인 방법은 삼차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영화 <집시>의 여주인공인 10대 소녀는 스트리퍼가 되고 나서야 자기몸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다. 우리 역시 그녀처럼 우리 자신과 다른 여성들의 육체를 사회적 무대와 사적인 침실 안에서만 경험한다. 즉 우리 자신의 육체가 고립되어 있을 때, 인공적으로 가공되었을 때, 남성이 우리 몸을보고 있을 때, 남성의 시선에 의해 평가되기 위해 보여질 때만 자기 몸에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 P71

대부분의 여성들이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하고 있으므로 일할 - P79

수 밖에 없으니까 도 진짜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만약 모든 시민의 노동권이라는 더 큰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그 말만 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일할 권리를 얻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여성의 독립이란 호황기에나 가능한 사치라는 엉터리 주장을 들어야만 할 것이다. 고용주는 대량 감원이 아닌 다른 대안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게 될 것이고 언제든 실직할 수 있다는 걱정은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아들이게 하는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그리하여 재능있는 여성들이 그 재능을 실현하지못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가족이나 나라에 커다란 손실이 될 것이다.
가장 큰 손실은, 생산적이고 존경받는 노동을 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욕구이며 또한 인생의 기본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여성들이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 P80

대부분의 여자들이 좀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할 필요는 있지만, 자기주장 훈련은 기존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게임을 더 잘할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성차별적 어휘에 반대하는 것은 남자들에게도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자기주장 훈련은 혁명이 아니라 개량을목표로 하고 있었다. 즉 여성에게만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남성의 의사소통 방식을 효과적인 유일한 모델로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런 훈련의 결과 많은 여자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남자들도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를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남성의 방식을 따라함으로써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게임을 미화하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 P83

혼성집단에서는 남자가 말한 주제가 여자가 제안한 주제보다 채택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혼성집단 내에서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 이야기하기보다 남자들과 이야기하게 되기가 쉽다. 따라서 혼성집단은 여자들의 생활과 관심보다 남자들의 생활과 관심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P89

대개 약자 집단은 힘있는 자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힘있는 자들은 약자들을 잘 알지 못한다. 흑인은 살아남기 위해 백인을 이해해야 했고 여성은 남성을 잘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배 집단은 약자 집단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간단히 생각해 버려도 된다. 이해할 수 없는 ‘타자‘ 라는 생각은 권력의 불균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피지배 집단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 결과, 지배집단이 피지배집단의 말을 듣고 싶어할 때조차 타자는 말하기를 포기하게 된다. 자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설명하기란 정말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서로에 대해 알고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여자들은 남자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간만큼 여자들도 자기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우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 P93

낸시 헨리는 몸의 정치학: 권력과 성 그리고 비언어적의사소통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은 표정이 풍부해서 남성에 비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 감정들은 정형화된 여성 이미지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명랑함뿐 아니라잘 우는 것 같은 부정적인 것도 포함된다." - P97

말하고 듣는 것에서 실현되는 권력을 공격하는 것은 문화의 혈관을 바꾸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관을 통해 이야기가 서로 전달되고,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변화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고 듣는 것의 정치학을공격하는 일은 매우 급진적인 행위이다. 문자나 시각 이미지 등 우리가 직접 나타날 필요 없는 의사소통 형식과 달리, 말하기와 듣기에서는 우리를숨길 수 없다. 글,그림, 소리를 통해서는 성별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고남녀 구별이 어려운 이름을 써서 우리를 보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하기와 듣기에서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채로 여러 감각을 사용하여 이해받고 신뢰받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말하고 듣는 방식을 변화시키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꼭 변화시켜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 P99

‘포르노그라피‘ 라는 말은 그리스어 ‘포르네‘ (매춘부나 여자 포로)와 그래포스(서술, 묘사)를 합친 것이다. 그러므로 포르노그라피의 언어적 의미는 ‘성을 사는 것을 묘사한것‘ 이며, 권력의 불균형, 성노예화를 함의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품위를떨어뜨리는 행위를 묘사하는 것도 포르노그라피의 정의에 포함된다. - P104

‘에로티카‘는 섹스와 폭력을 구별하는 데 유용한 용어이다. 섹스와 폭력을 구별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성적 쾌락을 구해낼 수 있었다. 그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에로스(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의 이름에서 나온 말로서 성적 욕망 또는 성애를 의미한다)이며 따라서 에로티카의 개념에는 사랑과공감, 적극적인 선택, 특정한 사람에 대한 갈망 등이 포함된다. 포르노그라피가 매춘부와 관련된 말인 것과 달리 ‘에로티카‘ 라는 말에서는 성별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성애보다 남성간의 동성애가 더가치 있다는 생각했고, 그런 믿음 덕분에 에로티카‘ 라는 말은 권력의 공유를 함축하게 되었다. 하여튼 그 말에는 불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 P105

인종차별주의 주장은 조직적인 학살과 폭행 등의 행위로 이어지고 그행위까지 정당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적인 영화를 보는 것은 폭력을 더 많이 용납하게 만들고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인다는 사실이 실험 결과 밝혀졌다. 모든 인종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선전물 역시 집단 혐오의 한 형태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포르노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포르노는 남성의 공격성을 만족시키는 "안전" 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포르노가 없으면 남성의공격성이 실제로 발휘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포르노도 폭력을 미화하는선전물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그것만은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걸까? - P108

이제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분노를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섹스를 폭력으로부터 분리해내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포르노그라피를반대하는 시위를 공개적으로 벌이고, 포르노 잡지와 영화를 집 밖으로 내던져야 한다. 포르노 상품을 파는 가게들에 대해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 파시즘 작품을 즐기거나 KKK단의 교의를 지지하는경우에 그것을 심각한 일로 받아들이듯이, 만약 친구와 가족이 포르노를즐겨 본다면 그것을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폭력과 공격성을 섹스와 동일시하는 남성 지배가 종식되기 전까지는 우리 삶에서 에로티카보다는 포르노그라피를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침대 위에서는 포르노만 재현될 뿐이고 사랑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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