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콜링'을 직접적으로 당해본 기억은 없으나(아니면 내가 외면하거나 무시했을지도)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불쾌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 하에 주어진 남성의 권력의 과시성에서 온다는 점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런 상황이 비단 여성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소수자들에게도 확장되어 사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도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보면 길가다가도 농짓거리를 한다거나 장애인을 보고 깔보는 시선과 비하하는 말들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남성, 특권층)이 본인이 세상을 구성하는 전부가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같다. 여성들이 이런 상황을 부딪쳤을 때 적극적인 항변의 행위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문화 의식의 성장 아닐까. 남성의 공감 능력은 필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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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많은 언어에 어떤 사람이(대체로 남성이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여성 혹은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성적인 언사를 외치는 행위를 묘사하는 표현이 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캣콜러들은 자신의 언행이 여성에 대한 칭찬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어디 가, 자기야?", "와, 저 엉덩이 좀 봐!"). 하지만 사회과학자들과 캣콜링을 당하는 사람들 모두 실제로 그런 의도가 아님을 안다. (...) 그가 원한 건 내가 자기 말을 듣고 그저 나에 대한 통제권을 쥐었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단 몇 초라도 말이다. 캣콜링은 섹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문제다. - P202
캣콜링, 방해, 여성이 미쳤다며 무시하기, 혹은 다른 방식의 침묵하기는 권력을 향한 점진적인 도전에 대응하는 방식들이다. 이는 모두 여성이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하면서, 그들이 갓 요구하기 시작한 권한으로부터 그들을 멀리하게 만드는 정당화의 방식이다. - P206
2009년 「사회적 전략으로서의 칭찬」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언어학자 네사 울프슨과 조앤 메인스는 칭찬의 즉각적인 발화 기능이 무엇이든 간에, "칭찬의 기저에는 발화자와 청자 간의 결속을 강화하거나 형성하는 사회적 기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상호작용에 익숙하지 않은 외계인에게 칭찬을 통한 결속 개념을 설명하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웃어!"나 "엉덩이 한번 만져 보자" 같은 말은 그다지 좋은 예가 될 수 없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 P210
캣콜러나 다른 방식으로 희롱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말이 상처가 된다는 정보를 주어도, 그만두게 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이 타고나길 잘못 타고나서가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다면 얼마나 좋게.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우리 문화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 어디 속해 있다고 여기는지와 관련이 있다.
기저에 깔린 문제는 남성이 여성의 몸에 대해서 자동으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그 가정에 있다. 이는 사회적 통제의 현시이며, 여성들로 하여금 남성이 소유한 세상에 침입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따라서 사생활을 가질 권리가 없다고 여기게끔 한다. - P215
남성성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극단적이고 부적절하다. 우리는 남성으로 하여금 힘이 있어햐 하고, 이성애적이어야 하고, 절대로 여성성과 연관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남성적인 정체성을 수행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남성은 여성의 관점을 모른 체하고 고통을 무시해야 한다. - P217
주변화된 집단의 친구들에게 스스로를 명료히 대변하라고 가르치는 건 중요하다.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건 문제를 절반만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여성과 퀴어가 자신을 대변하기 쉽지 않은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220
세상이 전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남자들이 어린아이일 때, 양육자이자 선생님으로서 우리는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상상을 깨부술 필요가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공감해도 괜찮다. 다른 남성이 언어로나 다른 방법으로 여성을 쓰러뜨리려할 때 남성이 여성에게 공감하고 동조하고 지지해도 괜찮고, 정말 권장돼야 한다. 그리고 남성이 아닌 사람을 세상의 침입자처럼 대하는 건 괜찮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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