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인들 무리가 규방 문 앞에 몰려와 있었다.
그중에는 아주 점잖은 모습의 중년 뮬라토 여인도 있었는데, 그녀는문 옆에서 기대와 환희로 몸을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매미가 왔다!" 에바는 방안을 가로질러 가 그 여인의 품에 몸을 내던지면서 여러 번 키스했다.
이 여자는 에바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에바를 껴안으며 웃음과 울음을 번갈아 터뜨렸기 때문에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다음에 에바는 하인들과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나누며 키스를 했다. 미스 오필리어는 그 광경을 보고 속이 메슥거렸고, 잠시 후 그런 심경을 말했다.
"얘, 남부의 어린애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척척 해내는구나."
미스 오필리어가 말했다.
"또 뭡니까, 누님?" 세인트클레어가 말했다.
"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고 남의 감정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저 키스만은....."
"흑인들하고 키스는 못 하겠다 이거죠?",
"그래, 그거야. 저 애는 어떻게 저리도 자연스럽지?" - P295

"엄마, 그렇게 하면 안 될까? 매미는 몸이 안 좋아. 요새 늘 머리가아프다고 했어."
"또 매미의 두통 타령이냐? 매미도 다른 하인들과 마찬가지야. 머리가 아프다, 손가락이 아프다, 온갖 핑계를 둘러대며 칭얼대기만 해.
그런 걸 오냐오냐하며 다 받아주면 절대로 안 돼. 절대로!" 마리가 미스 오필리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형님, 절대로 오냐오냐하면안 되세요. 하인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다 토로하게 하고 또 사소한 질병까지 모두 말하도록 내버려두면 나중에는 너무 많아서 감당하지 못해요. 나는 불평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아무도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나는 조용히 참아넘기는 걸 의무로 생각하고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 P306

"주님께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않나?" 오필리어가 간단히 물었다. 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정말 황당한 얘기예요. 그들은타락한 종족이에요."
"올케는 그들이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거야?"
오필리어가 약간 분노하는 어조로 말했다.
"아, 그거요?" 마리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거야 물론 의심하지않죠. 하지만 그들을 우리와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거, 그들이 우리와비교의 대상이 된다는 거 따위는 황당한 얘기죠. 세인트클레어는 매미를 남편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나를 그로부터 떼어놓는 것과 똑같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비교를 하다니 정말 황당무계하죠. 매미는 내가 갖고 있는 그런 감정을 가질 수가 없어요. 그건 전혀 다른 거예요.
그럼요, 다르고말고요. 그런데 세인트클레어는 그걸 모르는 척하는거예요. 내가 에바를 사랑하는 것처럼 매미도 그 지저분한 흑인 애들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 P312

"세인트클레어에게 바라는 게 뭔가?"
"그들을 구치소에 보내거나 매질하는 태형장에다 보내는 거죠.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내가 이렇게 병약하지 않았더라면 세인트클레어보다 두 배는 더 힘을 내서 집안일을 관리했을 거예요." - P313

"노예 주인들은 엄청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 오필리어가 말했다. "난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노예 주인이 되지는 않을 테야 노예 주인들은 데리고 있는 노예를 교육시켜야 하고 합리적인 인간으로, 또 불멸의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해줘야 해. 그런 다음하느님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아야 해. 그게 내 생각이야." 오전 내내쌓여왔던 마음속의 열기를 그런 식으로 터뜨리며 오필리어가 말했다. - P316

"어떻게 애를 저렇게 내버려두지?" 오필리어가 말했다.
"왜요?"
"글쎄, 좀 창피해서."
"누님, 어린애가 커다란 검둥이 개를 쓰다듬는 건 아무렇지도 않으시죠? 그렇지만 생각하고 추론하는 불멸의 영혼을 가진 사람과 함께장난하는 건 보기 흉하다는 건가요? 자, 솔직히 고백하세요, 누님. 나는 북부 사람들의 감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남부인이 그런 혐오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건 하나의 미덕이다. 이렇게 말하려는 - P318

아니에요. 하지만 남부의 관습은 기독교에서 마땅히 하라고 가르치는것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 편견의 느낌을 없앴다는 거죠. 나는 북부로여행할 때마다 북부 사람들의 편견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는 느낌을받아요. 북부인은 뱀이나 두꺼비를 싫어하는 것처럼 흑인들을 싫어해요. 그러면서도 그들이 학대받는 사실에 대해서는 분개합니다. 흑인들이 학대받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흑인들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들을 아예 아프리카로 보내서 그 모습이나 냄새를 아예 제거하고 싶어하죠. 그런 다음에 아프리카로 선교사 한두 명보내서 그들을 간단히 칭찬해주며 자기 속죄를 하려고 해요." - P319

노예제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말하라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지한다. 우리는 그 제도를 시행 중이고 계속 유지하려 한다. 그것은 우리의 편의와 이익을위한 것이다. 나는 이게 사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결론은 결국 이거죠. 이건 어느 곳에 사는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오거스틴, 당신은 너무 불손해요!" 마리가 말했다. "당신의 말은너무 충격적이에요." - P327

"종교!" 세인트클레어가 큰 소리로 말하자 두 숙녀는 놀라서 그를쳐다보았다. "두 분이 교회에서 들은 게 종교라고?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사회의 괴기스러운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굽어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종교라고? 세속적이고 눈멀고 비종교적인 내 성격보다도 양심적이지도 않고 관대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 그게 종교라고? 절대 아니야! 내가 종교를 바라볼 때는 나보다 위에 있는 어떤 것을 찾지 나보다 못한 것을 찾지는 않아."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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