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남성은 여전히 정치적 관점에서 이 나라의 학식 있는 백인 여성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백인 여성은 흑인과 이민자에 우선하여 참정권을 누릴 자격이 크다? 이는 명백히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다.
1867년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은 백인 여성으로서 참정권을 얻는 일이 흑인 남성이 투표권을 얻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고 노예 해방을 목전에 두자 스탠턴을 비롯한 일부 백인 여성들은 흑인 참정권에 결사 반대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남부의 흑인에게도 투표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평등의 관점에서). 남부에서 흑인을 상대로 자행되는 폭력과 테러의 심각성을 따져볼 때 백인 중간계급 여성보다 흑인에게 투표권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군이 남부군에 승리하자마자 스탠턴과 동료들은 여성참정권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이들은 여성 권익 옹호를 위해 노예 해방 운동에 뛰어든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뛰어들지 않았을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화당은 여성참정권을 지원하지 않았는데 자신들은 북부의 자본가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노예 소유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던 민주당은 남부에서 흑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을 방법으로 여성참정권을 강구했다. 스탠턴과 동료들은 여성참정권 지원에 목이 말라 있었기에 민주당에 인종주의자인 조지 프랜시스 트레인을 끌어들였다. 트레인은 ˝여성이 먼저, 니그로가 마지막˝, ˝남자, 그들의 권리, 이 이상은 안 돼, 여자, 그들의 권리, 이 이하는 안 돼˝하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수정헌법 제15조는 인종, 피부색, 과거 노예였다는 사실(성별 제외)을 근거로 참정권을 박탈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성참정권 지지자들은 이 입장에 극렬히 반대했으나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미래를 위해 이 헌법이 비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등권협회가 해체되면서 흑인해방과 여성해방의 동맹은 결렬되었다. 평등권협회의 일부 남성 지도자들은 남성우월주의적이었고 여성 지도자들은 인종차별적이었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애비 켈리 포스터(Abby Kelly Foster)는 스탠턴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고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할 때까지 현재의 고충과미래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흑인의 안전을 연기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진짜 정의감이 있는 건가? 인간애라는 정서가 전혀 없는 게 아닌가? - P125
정통 공화당원들이 "지금은 니그로의 시간이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남북전쟁 이후 여성참정권 요구를 억눌렀을때, 사실 그 밑으로 진짜 하고 있던 말은 "지금은 우리 당에200만 표를 더 끌어들일 때다"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캐디스탠턴과 그 동료들은 그것이 ‘남자의 시간‘이라고, 그리고 공화당은 남성우월주의의 완전한 특혜를 흑인 남성들에게 확대할 준비가 되었다고 믿는 것 같았다. - P128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과 수전 B. 앤서니 모두 북군의승리를 남부 노예정치의 피해자였던 수백만 흑인들의 진정한해방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노예제가 폐지되면 흑인들이 미국사회 내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중간계급 백인 여성에 필적할지위로 자동으로 승격된다고 생각했다. - P130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투표권이 없으면 남부의 흑인들은경제적 진보를 전혀 이룰 수 없으리라고 주장했다. 선거권이 없으면 니그로는 사실상 여전히 노예 상태일 것이다. 개별적인 노예 소유는 철폐되었지만 이 조치 없이 (그러니까 투표권 없이) 남부의 주들을 복구한다면 공동체에 의한 흑인 소유 관행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 P132
남북전쟁 이후 여성 권익 지도자들은 투표권을 목적 그자체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미 1866년에는 아무리 그 동기가 인종주의적이라 해도 여성참정권이라는 대의를 강력하게밀어붙이기만 하면 누구든 여성운동의 신입 구성원으로 충분히 인정받는 듯했다. 수전 B. 앤서니마저도 백인우월주의자를자처하는 국회의원이 여성참정권에 지지를 표하는 데서 빤한 모순을 감지하지 못했다. 앤서니는 노예제 찬성 입장을 가진 신문 편집자 출신 국회의원 제임스 브룩스(James Brooks)를 공개적으로 칭찬해서 프레더릭 더글러스를 크게 당황하게만들었다. 브룩스의 여성참정권 지지는 분명 공화당의 흑인참정권 지원에 맞서는 전략적 움직임이었음에도 수전 앤서니와 동료들은 브룩스에게 열렬히 찬사를 보냈다. - P135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19세기의 가장 명민한 흑인해방 지지자였음에도 자본가에 대한공화당의 충성심을, 그리고 이들에겐 흑인 참정권에 대한 초기의 요구만큼이나 인종주의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이해하지 못했다. 평등권협회 내 흑인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의 진정한 비극은 참정권이 흑인들에게 거의 만병통치약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더글러스의 입장이, 어쩌면 여성참정권에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인종주의적 완고함을 부추겼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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