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寅】蒙驁帥師伐魏魏師數敗魏王患之乃使人請信陵君於趙信陵君畏得罪不肯還毛公薛公見信陵君曰公子所重於諸侯者徒以有魏也今魏急而公子不恤一旦秦人克大梁夷先王之宗廟公子何面目立天下乎語未畢信陵君色變趣(促)駕還魏魏王持信陵君而泣以爲上將軍信陵君使人求援於諸侯諸侯聞信陵君復爲魏將皆遣兵救魏信陵君率五國之師敗蒙驁於河外
○ 五月秦王薨立三年其子政立封相國呂不韋爲文信侯號稱仲父
後秦紀
始皇帝上卽王位二十五年幷天下卽帝位凡十二年壽五十
始皇帝上
【丁巳】趙王以李牧爲將伐燕取武遂方城李牧者趙之北邊良將也嘗居代鴈門備匈奴以便宜置吏市租皆輸入莫(幕)府爲士卒費日擊數牛饗士習騎射謹烽火多間諜爲約曰匈奴卽入盜急入收保有敢捕虜者斬匈奴每入烽火謹輒入保不戰如是數歲亦不亡失匈奴皆以爲怯邊士日得賞賜而不用皆願一戰於是大破殺匈奴十餘萬騎滅襜襤破東胡單于犇(奔)走十餘歲不敢近趙邊
신릉군이 다시 위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사연.
이인이 왕위에 오른 뒤 3년 뒤에 바로 죽고 정이 황제에 올랐으며 여불위가 국상이 되었다.
이때부터를 통감에서는 후진기로 분류하였다.
이목은 조나라 북쪽 변방에 있던 장수였는데 변경인 만큼 흉노의 침입이 잦았는데 그 때마다 들어와 지키고 싸우지 않으면서도 잃어버리는 것이 없게 했다. 흉노족은 이에 그를 겁쟁이로 여겼고 장수들도 싸우기를 원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출전하여 흉노족을 대파하여 죽이니 10년 동안은 조나라 변경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읽었던 초한지 앞부분과 비슷한 시기를 읽게 되는구나. 그래서인지 맞물려서 더 재밌게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