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 등과 같은 기마민족이 ‘철의 문화‘를 각지에 전파한 사실은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의 철에 기마민족의 그림자가 그렇게 짙게드리워지지는 않은 듯하다. 만약 기마민족이 철을 전파했다면 중국의 철의 고향은 북방이 될 터였지만, 실제로는 오, 월, 초등 남방이 철의 선진지역이었다. 세계에서 철의 고향이 오리엔트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그 제조방법은 단철법(鍛鐵法)이었다. 두드려서 불리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철은 처음부터 주철법(鑄鐵法)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에서 주철법이 시작된 것은 중세(14세기 무렵)부터였다고 한다. - P32
춘추 시대의 제후는 주나라로부터 토지를 받은 봉건영주들이었다. 농업기술의 진보로 새로이 토지를 개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주나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 내었다. 새로이 개간된 땅은 영지의 변경이었을 테니, 영주 스스로가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신하들의 일이었다. 명령을 받아 하는경우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이익을 가져다줄 새로운 토지가 생기는 일은 담당한 가신의 공적이니 그들이 권리를주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제후를 섬기는 유력한 신하들이 더욱 유력해져서 드디어는 군주를 능가하게까지 되었다. 이것이 전국 시대의 양상이었다. - P33
위나라의 문후 밑에 모인 사람들은 자하를 비롯하여 유 - P48
가 출신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승 격인 세 사람을 제외하면, 유가 출신이기는 하지만 유가 출신자답지 않은 사람들이많았던 듯하다. 예를 들어서 오기는 증자의 문하생이었지만, 그의 품행을 살펴보면 유가적인 면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유가에서 파문을 당했다. 누가 분류를 하더라도 오기는 병가(兵家)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법률, 경제, 산업에 열성적인 것은 법가(法家)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이극과 서문표는 유가인 자하의 문하생이었지만, 그 업적을 보면 법가라고 분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은 전향한 사람들이었다. 위나라의 문후가 구한 것은 부국강병에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실무가였다. 먼저 몸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가는 눈앞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가 없다. 문후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들은 전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전향을 한 사람이 아니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나라 직하의 학사들은 위나라 문후 밑에 모였던 무리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실무가가 아니었다. - P49
직하의 백가쟁명 시대는 중국의 학문, 사상의 황금시대였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논쟁으로 인해서 학문과 사상은 한층 더 깊어졌으며, 또 새로운 것도 태어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나라 위왕과 선왕의 공적은 침략 당했던 땅을 되찾고 제나라의 위광을 천하에 알린 것보다 직하에 학자를 모아 놓고 백가쟁명을 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할것이다. - P58
이 두 사람은 서로 양극에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맹자는 인간의 성(性)은 원래 선한 것이며, 악해지는것은 후천적인 환경이나 습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배제하면 인의(仁義)가 나타나 사람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자는 후천적인 것이야말로 선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원래 악인 인간을 개조하면사람은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자가 후천적인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유가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예(禮)‘가 있었다. 성선설에 따르자면, 자연 그대로 두는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데도 성인은 어째서 ‘예‘를 정한 것일까? 예는 인위적인 것이다. 성인은 틀림없이 인간을 자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예를 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은 원래 악한 것이 되는 셈이다. 이것이 성악설의 기본 사상으로 순자가 얼마나 예를 중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 P74
맹자는양과 묵의 도가 끊기지 않으면, 공자의 도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탄했다. 지금 우리들은 도가라고 하면 노자와 장자의 이름을 떠올리지만, 맹자 시절에는 양주가 대표자였다. 하지만 이 사람의 저서도 전기도 남아있지 않다. 『맹자』나 『한비자』, 또는 『열자(列子』 등에 흩어져 있는 글을통해서 그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노자의 제자였다고도 하며 실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양주에 대한 것으로는 『맹자』 「진심편」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유명하다. 양자양주는 자신을 위해서 행동을 취한다.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 할지라도 하지 않는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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