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6.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해석의 자유

포스트근대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실재와 재현의 구분이 불필요하다

엘리스 자딘의 <가이네시스>(1985)
세일라 벤하비브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질문>(1992)
엔젤라 카터 <써커스의 밤>(1984) ***

참고 작품 중 읽고 싶은 것이 생겼다. 카터의 작품은 꼭 읽어 보고 싶다. 역사물의 젠더화, 역사의 본질 탐색. 딱 내가 보고 싶던 것. 또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고 하니.

우리는 쟝 보드리아드(Jean Baudrilard)가 말한 "하이퍼리얼리티"의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텍스트의 연속이다." 그런 상태에서 정체성이나 자아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더 이상 건전한 판단이나 윤리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통합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근대의 신념은 사라졌다. 대신에 인간은 분열되어 있고, 일관성이 없으며, 비이성적인 존재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려면 여러 가지 다양하고, 작고, 지역적인 설명들이 중요해진다. - P250

포스트근대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경제적 요인들을 설명하는 개념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시대의 문화적 생산품을 지칭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순순히 사회적 변화에 대한 문화적 반응으로만 보는 것은 너무 나이브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실재와 재현이 점점 더 불필요한 구분임을 내포하고 있다. - P251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프랑스적 요소에 의해 이와 같은 페미니즘 정의가 해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페미니즘이 여전히 직설적 분류를 강조하기때문에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자딘은 페미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과 공통점이 있는데, 공통점은 둘 다 계몽주의적 사유의 특징인 배타적이고 지배적인 서사를 비판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믿을 만한 신조어 ‘가이네시스‘ㅡ즉, ‘여성‘의 담론을 모더니티의 조건에 내재하는 과정으로서 표현하는 것의 과정"에 매료되어 있다. 즉, "여성적인 것과 여성‘을 새롭고 필수적인 사유, 쓰기, 말하기의 양식에 내재적인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25). - P255

벤하비브는 세 개의 주제들-인간의 죽음, 역사의 죽음, 형이상학의죽음을 제인 플랙스(Jane Flax)의 책 사유하는 파편들』(ThinkingDENFragments: Psychoanalysis, Feminism and Postmodernism in the ContemporaryWest) 로부터 빌려온다. 벤하비브는 페미니즘도 비슷한 세 개의 주 - P259

제를 창조해냈고, 이는 바로 "이성적 남성 주체의 탈신비화", "역사적 서사의 젠더화", "초월적 이성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회의",다. 다시 말해서 페미니스트 비평가나 철학자는 젠더 이슈와 불평등이 특별히 정체성, 역사, 이성에 대한 잘못된 근대 개념들 때문에생겨난 것으로 보고, 이들을 해체시켜버린다. 그러나 페미니즘이포스트모더니즘 주제들의 "강한" 버전에 동의하려면 "자기모순의위험과 일관성을 잃는 위험을 무릅써야만" (213) 가능하다. 벤하비브는 주체의 "위치 지움" (situatedness)의 "약한" 버전을 기꺼이 인정하는 반면, 주체의 죽음에 대한 주장은 페미니즘에 어떤 동력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P260

카터의 페미니즘은 벤하비브가 정의한 "강한" 포스트모던적 입장과 갈등해왔다. 카터의 사망 직후 존 베일리(JohnBayley)는 카터의 글을 "정치적 올바름"과 연결시키면서 논평하길, - P262

카터는 "항상 올바른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안주한다"고 말한다.
베일리는 카터가 언제나 당당하게 페미니스트이지만, 베일리가 보기에 최고의 문학은 그런 [페미니스트] 이슈를 초월해야 하고, 완벽예술은 위대한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은 그것이 어떤 글이든지 간에 정치적 아젠다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그는받아들이지 않는다. (…) 벤하비브가 주장하듯이, 거대 서사를 포기하는 포스트모던 입장을 취한다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억압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건하는데 필요한 정치적인 헌신까지 포기할 지도 모른다. - P263

『써커스의 밤』에서 역사는 죽지 않았다. 이 소설은 여러 면에서결정적으로 역사물이다. 20세기가 시작되는 무렵의 상황은 이 소설에 단순히 이국적 배경만은 아니다. 이 소설은 역사 서술을 젠더화하고, 역사의 본질을 탐색하며, 가부장적 역사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페버스의 개인적 역사는 19세기 말 숨 막히게 점잖은 문화의 이면에 놓인 여성적 측면을 드러내는 "그녀의 이야기"(herstory)이다. 페버스는 빅토리아 문화의 다른 측면, 매춘, 착취, 빈곤, 괴물성, 범죄를 전면으로 드러내고, 빅토리아 문화가 어떻게 여성을 젠더화했는지 밝혀내고 있다. 그러면서 페버스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축은 상호 의존하고 있으며, 억압 과정은 욕망을생산하는데 필요하다는 푸코 방식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또한 페버스는 역사의 작동 방식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것 그 이상을 한다. - P275

『써커스의 밤』은 포스트근대성과 페미니스트 이론을 함께 논의할 때 생겨나는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질문인즉, 정치적으로 유용한, 여성의 정체성과 경험의 폭넓은 카테고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차이와 특이성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이다. 이 질문은 자딘과 벤하비브도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카터의 소설에 고집스럽게 나타나는 유물론은 자딘의 해법 전복적인 여성 저자의 가이네시스-과는 다른 답을 제공한다. 그 답은 "유토피아에 대한 윤리적충동"을 선호하는 벤하비브의 주장과도 다르다. - P283

카터의 『써커스의 밤』은 추상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정점에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출판된 1984년은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던 때가 바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전반이기 때문이다. 카터의 『써커스의 밤』이 발표된 때가 세기말이라는 시기적 조건과 더불어 특유의 개념과 스타일로 인하여, 이 소설은 19세기 근대적 거대 서사와 20세기 후반의 포스트모던 서사적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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