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미원조전쟁’ 기억의 소환과 굴절
베트남전쟁 기억의 히스토리오포티

‘당의 영도‘가 모든 서사의 주어가 되어버린 지금의 중국에서 ‘인민‘이 과거 혁명시대에 지녔던 정치적 주체로서의지위가 대폭 줄어든 것이야말로 항미원조전쟁이 2020년대의 정치공간에서 더이상 정치성을 갖지 못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 또한 이는 오늘의 중국이 전쟁당시 주창했던 것처럼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세계 약소민족과 인민‘을 대표한다는 정치적 상징성으로부터 멀어진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인민전쟁으로서항미원조전쟁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귀환할 자리가 중국 안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 이것이 바로 최근 중국에서 뜨거운 정치적 서사로 부상한 항미원조전쟁 현상이 지니는 역설성의 본질이다. - P216

‘히스토리오포티‘는 현대 역사학에서 사용하는 역사 인식의 한방법론이다. 이 신조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역사이론가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인데, 역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대적인 것으로서, 그 서술을 언어나 문자처럼 규정적이고 제한적인 방식이 아닌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즉 이미지(영상)로 서술할 수 있으니, 이미지(영상)를 의미하는 ‘포티(photy)‘를 ‘히스토리‘에 붙여 ‘히스토리오포티‘라 하였다. - P442

한국의 경우, 전쟁 기념물은 대부분 수직적이고 거대하다. 남성성으로 전쟁을 미화하는 방식이다. 국가주의 신화 안에서 참전군인은 전쟁의 고통을 초월한 영웅적인 전사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남의 나라 전쟁에 뛰어들어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로서의 규정 너머, 자유세계를 수호하고 국가의 번영을 위해 목숨을바친 애국자로 거듭났다. - P442

죽은 이들을 국가를 지킨 영웅으로 성화(聖化)시키면서 그것과 배치되는 기억은 일절 용납하지 않는 국가주의의 역사인식과 기념물이 전하는 것은, 죽은자의 목소리가 아니고 그들을 죽게한국가의 정치적 목소리라는 역사 해석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 P443

그 어떤 과거일지라도, 과거의 사실은 현재 속에서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과거 완전히 지나간 것이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규정하는 지점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 현재의 문제는궁극적으로 유가족의 피해(victim)와 용서 문제로 귀결된다. 가해자 용서의 여부는 전적으로 피해 당사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 P454

이는 국가주의를 지지하는 보수 진영 시각의 문제만은 아니다. 일부 진보적 시민단체는 국가주의에 대한 책임을 우선 묻는 것보다는 참전군인의 학살자로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에 더 매진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과 같이 참전군인을 또 하나의 피해자로 설정했던 활동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대체로 참전군인의 학살자로서의 주체 설정이 박정희 국가재보다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에 대한 자각 없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마치 철학적 명제와도 같은 의문을 던지면서, 마치 역사의 주체는 언제나 단수형-그것이 국가든 민족이든 혹은 왕이나 제후들이라는 가정을 저변에 깔고 역사를 단일하게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는 현상이 주로 벌어진다. 물론 그 단일한 역사라는 신화를 거부한다는 것에는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참전군인이 국가에 의한 피해자라는 사실 외에, 그들 또한 개별적으로는 전쟁의 폭력을 행한가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또 다른 복합성도 포함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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