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경과 후기 묵가
1. 전국시대 묵가의 상황
- 전국시대 묵경이 있었는데 변자의 학설에 대한 대응이었다. 묵가의 묵경은 유가의 순자, 정명편처럼 변자의 학설을 논박한 것이다.
- 묵가는 유가보다 더욱 논변을 중시했다.
- 묵자 사후 묵가의 제자는 4개의 파로 나뉘었는데(상리씨 유파, 상부씨 유파, 등릉씨 유파, 송견과 윤문 일파) 각 파들은 서로 달랐고 상대를 별묵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기들이 정통이라 주장했다.
2. 묵경 중의 공리주의
-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하는 것이 인간 본성에 자연스러우므로 공리주의가 행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욕망은 맹목적이라 행위 결과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사물 가운데 가볍고 무거운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권이며 이 때 치우침 없이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 묵경의 덕목: 의, 충, 효, 공적
3. 인식론
- 지(지각) -> 통찰
- 묵경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인간 생명의 본질로 여겼다.
- 문지, 설지, 친지: 인식의 기원 / 명지, 실지, 합지, 위지: 인식의 종류
4. 논변
- 좁은 범위의 정의: 쟁변으로서의 논변 -> 갑과 을 사이의 다툼으로 논변을 하고 논변을 하면 이기는 쪽이 생긴다 할때의 그 논변
- 넓은 범위의 정의: 시비를 밝히고, 치란을 규명하고, 유사점과 차이점을 밝히고, 이름과 실상을 고찰하고, 이익과 손해를 규정하고, 의심쩍음을 해결하는 것
- 논변을 행하는 방법: 혹, 가, 효, 비유, 모, 원, 추
5. 묵경의 “동이의 논변”
- 같고 다름을 이야기할 때 같아도 같은 이유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 묵경의 관점에서 보면 혜시와 장자의 “합동이” 설은 오류이다. 같은 점이 있으므로 같은 종류이기는 하나 한몸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6. 묵경의 “견백의 논변”
동이의 분리와 견백의 결합
7. 겸애설에 대한 묵경의 변호
- 무한함은 겸애주의에 방해된다
-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욕망사항은 항상 그 이익을 놓고 올바로 가늠(正權)해야 하고, 혐오사항은 항상 그 손해를 놓고 올바로 가늠해야 한다. 「경설」 : 권이란 두 가지 이익과 손해를 치우침 없이 고려하는 것이다." - P400
의(義)란 이로운 일(利)을 행하는 데에 있다. 「경설」 : 의란 천하 사랑에 뜻을 두고 천하를 훌륭히 이롭게 할 수 있는 데에 있다. 그 의가 꼭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義, 志以天下爲愛, 而能能利之, 不必用). 충(忠)이란 임금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있다. 「경설」 : 충이란 임금을 위해 힘써(忠, 以君爲強) 임금을 훌륭히 이롭게 할 수 있는 데에 있다. [임금에게] 그 충이 꼭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不必容). 효(孝)란 부모를 이롭게 하는 데에 있다. 「경설」 : 효란 부모를 사랑하여 부모를 훌륭히 이롭게 할 수 있는 데에 있 - P401
다(能能利親). 부모의 뜻에 꼭 맞는 것은 아니다(不必得). 공적(功,功績)이란 인민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있다. 「경설」 : 공적이란 때와 독립적이어야 한다(功不待時). 그것은 마치 의복을 마련하는 경우와 같다. - P402
지각(知 : 지각, 감성인식)은 [감각(인식) 능력과 객관 사물의] 접촉이다. 「경설」 : 지각. 지각이란 지(知 : 인식도구로써의 감각능력)가 외물과 서로접촉하여 그 형상을 모사할(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봄‘과 같다. - P403
사려(盧)는 추구(求 : 탐구)이다. 「경설」 : 사려란 지식(지각)상의 추구행위이다. 그러나 꼭 소기의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마치 흘겨보는 행위와 같다. - P405
지식에는 문지(聞:聞知), 설지(說:說知), 친지(親:親知), 명지(名:名知), 실지(實 : 實知), 합지(合 : 合知), 위지(爲 : 爲知)가 있다. 정 -「경설」 : 지식. 전수된 것이 문지이다. 유추에 장애가 없는 것(方不障)이 설지이다. 몸소 관찰한 것이 친지이다. [사물을] 일컫는 수단(所以謂 : 즉 명칭)이 명지이다. 일컫는 대상(所謂; 즉 객관 실체)이 실지이다. 이름과 실상이 배합하는 것(지식)이 합지이다. 뜻(志 : 목적)과 행위(行)가 위지(爲:爲知)를 구성한다. 뜻을 행위에 옮기는 지식이 위지이다]. - P406
혹(或 : 개연판단)이란 전부 그런 것은 아닌 경우를 지칭한다. 가(假 : 가언판단)란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지칭한다. 효(效:Imitation)란 본(法)을 취하는 데에 있다. 본받아지는 것이 본으로여겨진다. 원인(이유, 조건)이 효에 부합하면(中) 참된 원인(眞)이고, 효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 이것이 효의 방법이다. 비유(辟)란 별도의 사물을 제시하여 어떤 것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모(: 직접추론 /『신편』)란 명제(辭)를 비교하여 똑같이 간주하는 방법이다. 원(援 : 유추)이란 네가 긍정하는데 나라고 긍정하지 못하겠느냐 하는 방법이다. 추(推)란 아직 채납(승인)되지 않은 것들(미지의 것)이 이미 채납된(아는) 것들과 동일하다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마치 여타의 것이 동일하다고 하는데 나라고 그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과 같다. - P416
무릇 사물은 같은 점(유사점)이 있다고 해서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명제를 대비시킬(牟) 때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원(援)의 경우] 어떤 것이 그렇다고 할 때에도 각기 그런 이유가 있으니 그것들이 그렇다는 점은 유사할지라도 그런 이유까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추(推)의 경우] 어떤 것이 채납될 때에도 채납되는 이유가 있으니 채납되는 점은 유사할지라도 채납되는 이유까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유(辟), 비교(牟), 원례(援), 추론(推)을 통한 논단은 진행하면서 달라지고, 전변하면서 위태로워지고, 멀어지면서 잘못되고, 방만해지면서 근본에서 유리되는즉,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되고 고정불변의 통칙처럼 사용할 수 없다. 즉 언어의 의미는 다방면적이고, 유에는 다른 측면이 있고, 또한 각기 다른 원인에서 비롯되기때문에 단편적인 관찰을 해서는 안 된다. - P423
동이는 상대적으로 결정된다(同異交得). 유무(有無)의 경우처럼. 「경설」 : 동이는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어떤 부자의 관대함에 대해서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한다. 비교대상에 따라 똑같은 양을 많다고도 하고 적다고도 한다. 마당을 기어가는 벌레에 대해서 [관찰자 위치에 따라 기어간다고도 하고 기어온다고도 한다. 새가 앉은 오동나무가 꺽어지면 강하다고도[새에 대해서]하고 약하다고[나무에 대해서]한다. 검의 역할에 대해서[당사자 입장에 따라] 죽였다고도 하고 살렸다고도 한다. 처녀는 나중에 아이의 어머니가 되니, 어른도 되고 소녀도 된다. 비교대상에 따라 똑같은 것이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한다. 중앙도 가장자리가 된다. 학문과 행실에 대한 논의는 [기준에 따라]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한다. 기술의 숙달에 대해서 완성이라고도 하고 미완성이라고도 한다. 형과 아우는 같이 해당된다(兄弟俱適). 몸은 있으나 뜻은 떠나 있는 경우가 있으면서 없는 것(存亡)‘이다. 곽(霍)씨라는 성은 인위적이다(애초에 다른 자를 써도 되었다). 똑같은 물건의 값도 [구매자에 따라] 비싸다고도 하고 싸다고도 한다. - P424
공손룡은 일반개념 즉 이름의 내포에 입각해서 입론(立論)했으나, 여기서는 개체 즉 이름의 외연에 입각해서 입론했으므로, 이 두 파의 관점은 본디 달랐다. 『묵경』과 공손룡 일파의 변자는 일반개념에 대한 문제에서 견해는 달랐을지라도, "명실을 바루는(正名實)" 점에 대한 주장은 부합했다. - P432
[인구의] 무한함은 겸애주의에 방해되지 않는다. 논거는 [인구의] 충만 여부에 있다. 「경설」 : 무한. [비평] "남방이 유한하다면 [겸애의 대상에] 모두 포함시킬수 있지만, 무한하다면 모두 포함시킬 수 없다. 유한과 무한조차도 알 수 없다면 전부 포함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더욱 알 수 없다. 인구의 충만 여부를알지 못하면 전부 포함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더욱 알 수 없거늘 모든 사람을 사랑의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그대들의 주장은 모순이다." [대답] "그무한한 남방에 사람이 충만해 있지 않으면 사람 수가 유한한 것이다. 유한한사람을 모두 포함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무한한 남방에 사람이 충만해 있다면 그런 무한은 사실상 무한하지 않다. 그러므로 유한한 인구를 포함하는것에 문제가 없다." - P437
도망한 신하, 강아지, 개의 경우, 잃어버린 주인은 설령 그것들의 소재를 몰라도 사랑하는 데에 방해받지 않는다. 마치 잃어버린 아이의 경우와 같다. 「경설」 : 도망한 신하는 그 소재를 모르고 강아지와 개는 그 이름도 모른다. 설령 교묘히 찾았을지라도 [동일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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