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노예제에서 남성은 7년째에 자유민 남성으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편, 여성채무노예들은 첩이 되거나 결혼함으로써 상향이동하거나, 혹은 매춘상태로 하향이동할 수 있었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성적 서비스에 의해 결정되었다. - P187
사실상 메소포타미아의 예들은 재산이 남성에서 남성에게로, 즉 남성가장에게서 남성가장에게로 전달되지만, 여성들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부인은 자신의 지참금에 대해 평생 사용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혹은 자녀들)은 그녀가 죽은 후 그 재산에 대해 소유권을 행사하였다. 이혼을 하거나 아들을 낳지 못했을 경우에 지참금은 그녀의 아버지(혹은 남자형제들)에게 반환된다. 여성은 자신의 재산을 양도하거나 유언으로 남길수 없다. 그런 만큼 그녀의 권리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것으로서, 이러한 권리들은 남편에 대한 그녀의 성적 서비스와 재생산서비스에, 특히 그에게 아들들을 제공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 P192
결혼에서 여성가족원을 교환하는 남성가족원들(아버지, 남자형제, 숙부)의 관례적 권리는 가부장적 가족의 발달보다도 앞서 있었으며, 가부장적 가족이 다른 가족형태보다 우세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였다. 사유재산과 계급계층화의 발달로 이 관례적 권리는 결정적인 경제적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가장들은 가족의 재산을 최대화하고, 가족의 지위를 유지 혹은 개선시킬 수 있게끔, 결혼에서 가족성원들을 처분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가족경제에서 여성의 역할은 그 중요성이 점차 높아졌다. 그들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들의 생산자이자 자녀생산자이며,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며, 가내노동자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적서비스가 매매 가능한 상품으로 바뀌게 된 사람들이었다. 사물화된 것은여성 자신들이 아니라, 여성들의 성적 서비스와 재생산 서비스이다. - P195
구매에 의한 결혼과 계약에 의한 결혼은 함무라비법 시대 이래로 공존해 왔다. 두 가지 형태의 결혼은 서로 다른 계급의 여성들에게 적용되었다. 결혼에서 신부를 동반자로 보는 개념은 상층계급 가족들의 결혼계약 속에 함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층계급 여성들에게 결혼은 결국 가내노예화나 마찬가지였다. 메소포타미아법에서, 그리고 히브리법에서 훨씬 더 강하게, 첫째 부인들(상층계급)과 첩들(하층계급) 사이의 구별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모든 여성들은 점점 더 성적지배와 규제 아래 있게 되었지만, 그들에 대한 속박의 정도는 계급에 따라 달랐다. 우리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결혼한 부인은 그 연속선의 한쪽끝이었고, 노예여성은 다른 쪽 끝이며, 첩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자리잡고있다. 그러나 경제적·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다른 인간을절대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그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남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부인의 종속적 위치와 노예의 종속적 위치를 동등한 것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그런 해석은 실제 계급관계를 신비화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든다. - P197
함무라비 법에서 처음으로 완벽하게 제도화된 가부장적 가족은, 온정주의와 절대적 권위의 혼합 속에서 고대국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그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성별체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거꾸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태동기부터 고대국가는 가부장적 가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가족의 질서정연한 기능과 공적bere shock영역에서의 질서를 등치시켰다. 가부장적 가족을 공적 공동체라는 건강한 유기체의 기초적 건축블록, 즉 세포에 비유한 것은 메소포타미아법에서 최초로 표출되었다. 그것은 3천년에 걸쳐 이데올로기와 실천 속에서끊임없이 강화되어 왔다. 가부장적 가족이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것은 그것이 오늘날 미국에서 ERA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의 통과에 반대한 운동의 외양을 이루고 있는 방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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