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디지털 시대에는 남성들도 ‘몸캠의 피해자가 된다면서 n번방 사건을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다루는 데 반대한다. 그러나 남성 피해자의 촬영물은 범죄 집단에 의해 협박의 수단이 될 수는있을지라도 그 자체로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 피해 영상을 보기 위해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는 무수한 익명의 가담자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착취물’이라는 명명은 ‘남성 가담자 네트워크’와 관계된 ‘여성의 피해 촬영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게 옳으며,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분석한 세계에 기반한 단어이다. - P11

2004년 소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성매매 문제를 둘러싸고 두 개의 여성주의적 입장이 치열하게 경합하면서 성매매 참여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 이 두 입장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참여하는 요인, 경험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분석한다. 한쪽에서는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면서 자발적 노동 의지를 강조하며, 다른 쪽에서는 성매매를 폭력으로 정의하면서 성매매피해 여성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강제요인을 강조한다. 그 결과 이들은 성매매 ‘인정‘과 ‘근절‘이라는 각기다른 정치적 해법을 주장하고 있다. - P26

여성들의 성매매 참여 요인을 소득과 부채의 이분법으로 파악하는 건 결국 이 시대 ‘매춘) 여성‘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구조적 분석 없이 개별 인물의 교정과 처벌, 혹은 인정만으로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득과 부채의 담론은 성매매 여성이 처한 상황을 각각 자유와 자유의 억압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노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것‘ 또는 부채를 청산하면서 성매매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각각의 처방을 볼 때, 성매매 산업 안에 존재하는 신용과 부채의 회로를 고려하지 않고 성매매 문제를 시장 안에서의 화폐적 조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결국 동일한 논리적 한계를 지닌다. - P33

도덕이 성매매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빈곤한 매춘부에 대한 남성의 성구매가 구원으로서 옹호되었기 때문이다. 호혜적인 방식으로 의미화되는 성구매 행위와 이렇게 지급된 화대는 유구한 시간 동안 성매매 산업을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 가부장적 담론이 가난한 여성들과의 윤리적 대면, 나아가 구원의 서사까지 이용해 성매매를 낭만적인 것으로 묘사한 사실을 볼 때, 성매매 문제를 도덕의 회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성매매가 이미 도덕의 레토릭을 통해 유지되어온 사실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 빈곤한 여성, 혹은 여성의 빈곤을 성애화하는 성차별적 담론이 재생산된다. - P43

이 시대의 도덕은 시장을 작동시키는 개인의 사적 이기심과 반대되는 내면의 원칙이 아니라, 시장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경제주체들에 윤리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주요 원리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도덕은 일련의 통치기술들이 행위로서 사회적인 것에 관여할 수 있게 만드는 담론적 매개물(Procacci, 2014(19911)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도덕적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더욱 명료해진다 (Muehlebach, 2012). - P49

제도에 기반한 현재의 여성운동은 매춘 여성들을 구제헤 사회로 돌려보내는 실천을 통해 본의 아니게 이러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를 성평등한 사회로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매춘 여성들의 ‘탈성매매가 가능하다는 신념에 기반을 둔 지식 생산과 활동은 의도치 않게 성매매 경제 안과 밖을 동떨어진 것으로 분리해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내재한 적대 관계를 가린 채 진보를 추동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 P60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 없는삶", "임금 없는 삶(Denning, 2013 [2010))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출은여성들을 성매매 시장으로 다시금 내모는 강력한 ‘도덕적 힘이 되고 있다. 여성 개인은 채무자에 대한 강력한 부채 상환의 명령 아래 자신을 적극적으로 상품화 원리금과 수수료를 납부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부채 채권은 또다시 증권으로 상품화되어 자본을 증식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 P68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성매매피해의 증거로 박제되어 잔여적 사회복지의 대상자로 단정되는 순간, 우리는 성매매 여성들의피해가 만들어지는 그 경험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매매 문제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다시금 개인의 문제가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졌던 전제들을다시금 질문해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실은 이미 알려진 지식 체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조순경, 2000: 182). 또한 경험은 이미 해석인 동시에 해석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경합적이며, 그러므로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Scott, 1991).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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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22-04-10 0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의 도덕은 시장을 작동시키는 개인의 사적 이기심과 반대되는 내면의 원칙이 아니라, 시장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경제주체들에 윤리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주요 원리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아 이 문장에 밑줄 긋게 됩니다. 형광펜도 ㅎㅎㅎ 이 주제로 많은 연구가 나오길 바라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