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번의 학적 네트워크와 학당의 형성

번교 시습관에서의 ‘학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모습
학당이 형성되기 까지 나가오카 겐모쓰의 역할

당시 많은 사무라이는 수없이 존재하는 학습회 중 어딘가에 속하여 학문, 특히 유학을 공부했고, 또 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번교의 동년배, 선후배 또는 사숙, 학습회의 동료 간에 인적 관계가 생겼고, 각자의 선생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갔다. 이처럼 학을 매개로 한 관계에서는 기존의 반 구미로 이뤄진 군사 조직이나 역직 조직보다 가격이나 신분을 상대화할 여지가 많았고, 학문 실력이 관계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했다. 이런 성격의 ‘학적 네트워크’가 19세기 전반 구마모토번에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 P128

번 당국은 학문 교육을 통해 가신단의 규율과 질서를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학문을 통해 사무라이들이 정치화되는 것에는 큰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번 당국이 번교에서 정치토의의 금지 방침을 표명하는 것은 어느 번교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번 당국의 방침에 맞추어 대부분 번교들은 젊은 사무라이들의 혈기와 무례를 다스리기 위한 효제 등의 인성 교육이나 도시와 상업 발달로 인한 사치풍조를 교정하기 위한 절검 강조에 교육 방침을 두었다. 학문적으로는 훈고학적인 고색을 주로 하거나 사장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 P128

학당‘은 주로 번교 바깥의 사숙·학습회를 기반으로 발생했지만, 번교 내의 인맥이 번교 바깥에서 학당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경우도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번교 바깥에서 ‘학당‘이 발생했기 때문에 흔히학당‘과 번교의 주류 세력들은 학문적·정치적으로 대립되는 경우가많았다. 이 경우 번교를 중심으로 한 ‘학적 네트워크‘는 ‘학당‘의 개혁요구에 대항하는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 P129

‘학적 네트워크’, 나아가 ‘학당’에 가로급 인물 또는 그 자제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다. 막말 정치변혁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번 질서를 정면으로 뒤집지 않고 번 권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이용하는 형태를 취해 격렬한 소요나 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고 진행되었는데, 이런 과정이 가능하게 된 배경으로 가로급 인물들의 정치적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P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