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거친 투쟁‘에서 생겨난 주정주의, 즉각성이 정치를 감염할 것이라는 베버의 두려움은 인구의 다수에게서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화와 공명한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한편에 있는 욕구, 감정과 다른 한편에 있는 자유, 합리성의 대립 관계를 다시금 보여 준다. 정치에 적절하게 접근하려면 정치를 오염하는 생존 행위에서의 여유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오염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강력한 권력 본능이라는 긍정적 자질을 갖춘 정치적 지배층을 불러내면서 베버는 권력, 명망, 나라의 영광, 영웅적 리더십 같은 정치적 미학을 찾아 분투한다. 이 미학은 윤리, 사회, 문화, 경제 등 그 어떤 것이든 ‘공공선‘을 지도 목적으로 삼을 법한 정치적 실천의 반대편에 존재한다.

베버는 정치란 오직 정치적 연합과 지배에 활용되는 수단으로만 제한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정치 연합이 특히 연합 행동이 모든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통제 수단의 과감성 때문"이다.

베버에게 적법성은 충성, 준수, 복종 따위를 얻는 것과 관련된다. 그것이 지배 구조를 ‘올바르게‘ 보이도록 만들지만, 실제로 지배 구조가 그런지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적법성은 힘 있는 이들에게 도구로 필요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만 가치의 차원에서 소중히 여겨진다.

국가를 독특하면서 자율적이게 만드는 것은 그 국가의 권력에 대한 전면적 개입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의 점유다. 힘 있는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은 그 밖의 모든 것, 즉 기껏해야 권력에 간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행동과 사람을 포괄한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는 상호의존적이다. 국가는 민족문화의 ‘명망‘을 보호하고 증진하며, 민족은 국가의 위업을 위한 근본적 토대가 된다.

도구적 합리성은 어떤 목표든 그리로 가는 가장 명확한 길을 보여 주고, 그 목표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대상의 활용이나 지배를 수반하며, 자연 습관 종교 전통 등에서 풀려나게 하는 최고의 해방자다. 따라서 도구 합리적 행동의 자유는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한 권력의 외적 제약에서의 자유다.

그가 근대 세계 합리화의 원인이자 결과로 본 두 가지 근대 ‘체계‘는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다.

경제 사회 조직의 한 양상인 자본주의에는 상호 연관된 두 가지 차원의 합리화가 뒤따른다. 하나는 생산자를 생산수단에서 분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수단을 생산 목표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베버의 시각으로 볼 때 자본주의는 바로 이 분리 덕분에 가장 효율적인 생산양식이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에서 분리되고 그들 자신이 생산수단이 되어 감에 따라 생산의 목표와 수단은 사회에서 구별되는 두 부류로 나뉜다. 기술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합리화는 생산양식의 합리화와 노동자를 그들의 생존 수단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합리화는 대중을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이윤 추구가 합리화됨으로써 발생한다.대중은 그렇게 수단이 되면서, 순전히 도구 합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강제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수자==반된 다른 분리처럼 행정 수단(국가권력)에서 관료를 분리해 낸 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믿을 수 있으며, 따라서 가장 강력한 조직 형태다.

"관료주의적 행정은 근본적으로 지식을 통한 지배를 뜻한다." 관료주의는 특화된 훈련과 특권적인 정보 접근 양쪽 모두에 내재하는 권력을 키워 낸다. 그리고 이 함양의 목적은 관료주의 자체의 권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도구적 합리성을 활용하여 구현된) 특정 권력과 자유에 대한 추구는 삶 자체를 위한 투쟁에서 자율적이며,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야말로 오히려 생존경쟁을 강화해 왔다.

권력과 통제는 도구적 합리성을 통해 특히 경제와 국가의 영역에서 극대화된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에는 목표와 수단이 잠재적으로 불일치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에서 목표 자체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합리화 과정에 나타나는 지배 의지, 이것이 정점에 이르면 마침내 ‘여성적인 것‘이 무너져 내리는 무게가 된다. 이때 베버가 개념화한 여성적인 것을 위협하는 것이 바로 도구적 합리성의 출현이라는 기술이다. 남성성의 외적 세계를 구현하는 자유 통제 지배 권력에의 의지는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라는 총체적 지배 체제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완전히 실현되려는 찰나에 남성됨 자체가 통째로 으스러져 버린다.

정치적 ‘시실주의‘와 ‘책임 윤리‘에 베버가 헌신했을지라도 그것이 국가권력에, 국제정치에서 패권을 얻기 위한 권력 행사에, 자본주의 생산성에,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무자비한 기업가 정신에 그가 전념한 것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그는 이런 제도와 실천이 사회와 개인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목적이 되어 버린 수단임을 통찰력 있게 인식하고도 그런 제도와 실천을 옹호하고 변호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역설은 베버의 방법론에 있다. 왜냐하면 베버는 이 방법론을 통해 인간 존재, 문화, 연합, 행동에 대한 연구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베버가 고안해 낸 정치 영웅은 고전적 남성됨의 망토를 두른 채 근대 남성됨의 피조물, 즉 막강한 국민국가의 힘을 행사한다. 이 영웅은 남성의 통제와 지배 추구에서 비롯한 합리화된 정치적 경제적 삶이라는 기구를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따라 그것을 동원하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정치가는 제도화된 남성됨의 힘, 즉 관료제 국가를 휘두르는 남성 전사다. 그는 모든 남성적 정치 가치, 즉 사적 권력, 영웅주의, 폭력, 지배, 뛰어난 것에 대한 헌신, 일상적 존재를 비롯해 이 모든 것이 한데 녹아든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반감 등을 한데 구현한다. 베버는 진정한 정치가라면 반드시 책임 윤리에 복종해야 한다고 고집하는데, 도구적 합리성만으로도 그가 좇는 수준의 정치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도구적 합리성은 책임 윤리와 전혀 공존할 수 없다. 베버의 지도자 개념과 정치 자체에 대한 개념은 권력 수단에 대한 도구적 관계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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