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 도출된 주제들을 근대에 맞게 구현해 표현했다.

정치 권위의 토대와 정치권력의 행사는 모두 폭력과 연관되지만 뿌리와 특성이 서로 다르다. 정치 지배(폭력의 독점에 뿌리를 둔 권력)는 약탈적 습격에서 기원한다면, 정치 권위는 가정 관계에서 기원한다.

프로이트주의와 신프로이트주의의 목소리가 강하게 스며들던 시대와 환경에서 살아간 베버는, 프로이트의 ‘과학’에 비판적이었으며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만 그는 종종 프로이트의 개념들을 써 가며 개인, 관계, 사회현상을 숙고했다.

베버는 영구적인 심리적 위기에 빠져, 순전히 의지로 어둠에 맞서 싸운 남성이다. 그의 시대와 문화 역시 내부의 위기는 물론이고 전통의 무게 때문에 산산이 부서져 떨어지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겹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베버의 경우를 포함해 이런 위기가 근대성의 시기에 나타나는 남성됨 자체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베버는 이 위기를 포착해 자신의 주제로 다루는 한편 그 자신이 이 위기를 보여준다.

정치는 전쟁에서 탄생하지만, 정치와 인간이 전쟁마능로는 살아갈 수 없다. 정치 연합이 지속적인 토대 위에 존재하려면 일상적 삶에 뿌리내려야 하는 것이다.

"엄숙하게 약속받은 충성으로 맺어진 자유로운 동지애"야말로 남성의 집을 조직하는 원칙이다. 반면에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권위주의적 관계"는 가정관계에서 파생된다. 일상을 외부 공격에서 지켜 내야 할 때, 그 일상의 조직과 수행에 더 도움이 되는 후자가 좀 더 포괄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합법성의 토대는 다른 남성에게 대항하는 남성의 방어 능력 또는 보호 능력에만 있다.

정치 권위의 토대와 정치권력의 행사는 모두 폭력과 연관되지만, 그 뿌리와 특성이 뚜렷하게 다르다. 정치 지배, 즉 폭력의 독점에 뿌리를 둔 권력은 남성의 집이 행하는 약탈적 습격에 기원한다면, 정치 권위는 가정 관계에서 기원한다.

전적으로 남자다움으로 정의되고 남자다움과 동일시되는 단체의 조직된 폭력은 정치 행위와 지배의 첫 번째 형태였다. 그러나 이 단체는 착취의 대상이 되는 공동체에 기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치적 적법성이나 신념 체제와 함께하는 진정한 정치적 권위를 확립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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