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민족국가는 19세기에 인류가 모여 살았던 양대 정치단위다. 1900년 전후로 전 지구적 영향력을 가진 오직 두 개의 정치실체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제국이나 민족국가 가운데 어느 하나의 권위 아래서 살았고 이른바 세계정부 또는 초국가기구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열대우림, 대초원 혹은 극지방 같은 격리된 곳에 사는 소수의 인종집단만이 더 높은 권력기구에 공물을 바쳐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P1097

1881-1912년 사이에 유럽(과 미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정복과 권력을 탈취한 전체 과정은 일종의 이념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운 인종주의적 색채가 짙은 ‘강자의 정의론’은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은 자치의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유럽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켜낼 능력도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 P1114

19세기 유럽사에 관한 적지 않은 통사적 저작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각주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확장은 유럽사의 핵심이 아니라 유럽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몇몇 나라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란 인상을 준다.
결론적으로 외교사와 식민사 이 두 맥락은 연결된 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외교사와 식민사에 의존해 세계사를 관찰할 수 없다. 세계사를 관찰하는 시각을 찾으려면 유럽 중심론과 아시아 또는 아프리카 중심론 사이에 교량을 놓아야 하며, 그 밖에도 두 가지 매우 도전적인 난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19세기 말에 전 세계로 확장된 유럽 국제체제의 발전사를 식민과 제국주의 확장사와 연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목적론에서 출발해서 19세기 세계사를 1914년 발발한 전쟁과 자동적으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 P1115

19세기가 ‘민족국가의 시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두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는 19세기에 하나의 새로운 사유체계와 정치적 신화로서 민족주의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민족주의는 강령과 정책으로서 받들어졌고 민중의 정서를 자극해 동원하는 도구로서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시발점에서부터 강력한 반제국주의의 색채를 드러냈다. - P1123

19세기에 민족국가는 다음 세 가지 경로 가운데 하나를 통해 등장했다. 1.식민지와 혁명적인 결별 2.패권형 통합 3.점진적 자치, 이 세 가지 경로 각각에 대응하는 민족주의의 형태가 반식민 민족주의, 통합 민족주의, 분리 민족주의였다. - P1126

세계의 현존하는 민족국가 가운데서 어느 국가가 1800-1914년 동안에 수립되었을까? 1804-32년의 첫 번째 물결가운데서 출현한 국가는 아이티, 브라질제국, 라틴아메리카 공화국들, 그리스, 벨기에다. 19세기 60,70년대의 두 번째 물결 가운데서 패권형 통일 방식을 통해 독일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이 태어났다. 1878년, 베를린회의에서 열강은 원래 오스만제국이 통치하던 발칸반도에 몇 개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1910년에 성립된 남아프리카 연방은 ‘사실상의’ 독립국가였다. 수십 년이 걸린 남아프리카연방의 평화적인 독립 과정은 1차 대전 기간 중에 끝이 났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병력과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협상국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이 때문에 영국은 1918년 이후로는 더 이상 이들 국가를 식민지로 대우할 수 없었다. 1차 대전 이전에 태어난 신생 민족국가는 모두가 ‘철혈정책’을 통해 수립되지는 않았다. 독일, 이탈리아, 미국은 이 경로를 통해 태어난 것이 분명하지만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그렇지 않았다. - P1148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견뎌낸 유럽의 식민제국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이들 제국의 취약성이 아니라 강인성과 재생능력임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제국 형성기에서부터 살펴보면 15세기(오스만제국), 16세기(포르투갈과 러시아), 17세기(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청 왕조를 종점으로 하는 기원전 3세기까지 올라가는 최초의 중화제국)가 남겨놓은 역사의 ‘잔해’는 무수한 풍운을 거친 뒤 현대세계로 곧바로 뛰어들었다. 제국이 강력한 응집력과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오래 유지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P1154

제국은 광활한 공간에서 다민족으로 구성된 통치연맹이며, 일종의 비대칭적이며 사실상 전제적인 중심-주변부 구조를 가진 실체다. 제국은 강제적인 기구와 정치적 상징주의, 제국정부와 그 엘리트가 찬양하는 보편주의 이념을 이용하여 국가의 통일을 유지한다. 제국의 엘리트 계층 이하에서는 어떤 형태의 사회적 무노하적 통합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또한 동질적인 제국사회와 통일적인 제국문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관계에서는 제국의 중심부는 절대로 주변부가 독립적인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제국은 내부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끊임없이 거래하고 타협해야 한다. 상황이 좋다면 모든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제국 안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제국은 본질적으로 강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국은 자치를 누리는 파트너들이 제1인자를 중심으로 뭉친 패권적 연합이다. - P1166

19세기에 모든 제국이 적극적으로 활약하지는 않았다. 그 차이는 대륙제국과 해양제국의 구분과는 무관했다. 19세기 유럽 국제체제에서 줄곧 능동적이었던 3대 제국은 영국, 러시아, 프랑스였다. 독일은 1994년 이후로 식민제국의 대열에 참여했으나 비스마르크 집권 기간 동안에는 의도적으로 ‘세계정치’의 추진을 피했다. 항상 호전적이며 활력에 넘치던 중국제국과 오스만제국은 점차로 줄어드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유럽의 확장 앞에서 방어적 지위로 떨어졌다. 1895년부터 일본은 매우 적극적인 제국주의 ‘참여자’가 되었다. 19세기의 제국은 제국주의의 강도에 차이가 있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또는 추상적인 이론의 시각으로 볼 때 한 가지만 드러나는 제국주의 체제는 좀 더 깊이 관찰했을 때 다양한 제국주의로 분화한다. - P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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