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표상, 그중에서도 사회적 유형은 일반적으로 대립어의 쌍으로 명확하게 표현되며, 양면성은 영원한 여성의 내재적 속성으로 보이게 된다. 상관어로서 성스러운 어머니는 잔인한 계모, 천사 같은 소녀는 타락한 처녀와 대비된다.
그래서 때로는 생명과 같은 어머니나 죽음과 같은 어머니라고 말하기도 하며, 모든 동정녀를 순수한 정신이라고도 하거나 악마에 바쳐진 육체라고도 한다. - P370

사실 실존자라면 누구나 내재인 동시에 초월이다. 실존자에게 목표를 제시하지 않거나 혹은 어떠한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승리감을 맛보도록 허락하지도 않을 때, 그의 초월은 헛되이 과거 속에, 즉 내재로 다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에서 여자에게 할당된 운명이다. 그러나 노예제가 노예의 소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결코 여자의 소명이 아니다. 이런 신화가 오귀스트 콩트의 이론에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자를 이타주의와 동일시하는 것, 그것은 남자에게 여자의 헌신에대한 절대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여자에게 절대적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신화를 의미의 파악이라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미는 대상에 내재적이다. 그 의미는 살아 있는 경험에서 의식에 드러나는 것이다. 반면에 신화는 의식이 아무리 도달하려 해도 끝까지 달아나는 초월적 이념이다.

그리고 여자는 단순히 육체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육체는 각자에게 그리고 각각의 경험속에 독특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 남자처럼 -자연에 뿌리박고 있는 존재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종에 예속되어 있으며, 그 동물성이 더 뚜렷하다. 그러나 남자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은 실존으로 수용되고, 여자 역시 인간계에 속한다. 여자를 자연과 동일시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편견일 뿐이다. - P371

확실히 대부분의 신화는 자기의 실존과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남자의 자연발생적 태도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경험을 초월적 이념으로 높여 놓은 것은 가부장제 사회이며, 이는 자기 정당화의 목적으로 결연히 실행되었다. 그리고 그 사회는신화를 통해서 법칙과 풍습을 다채롭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개인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집단의 명령은 신화의 형태로 각 개인의 의식에 침투하였다. - P376

여자들을 가장 진정성 있게 소중히 여겼던 시대는 궁정풍 사랑의 봉건 시대도, 여자의 환심을 사려 한 19세기도 아니다. 그것은 - 예를 들면 18세기처럼 - 남자들이 여자들을 동류로 보았던 시대다. 바로 이때 여자들은 진정 몽상적으로 보였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험한관계」, 『적과 흑』,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라클로, 스탕달, 헤밍웨이의 여주인공들은 신비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에게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 P377

오늘날 남자들의 태도에는 이중성이 있다. 그 이중성은 여자에게 실로 대단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와 동류이고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여자에게 비본질적 존재로 남아 있기를 계속 요구한다. 여자에게는 이 두 운명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느 쪽에도 정확하게 적응 못하고 여자는 양자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여자의 불안정은 여기서 온다. 남자의 경우 공적 생활과 사생활 사이에 어떤 충돌도 없다. 남자는 행동과 일에서 세계에 대한 자기의 세력을 확인하면 할수록 더욱더 남성적으로 보인다. 그에게는인간적 가치와 생명의 가치가 뒤섞여 있다. 반면에 ‘진정한 여자‘에게는 객체가 되고 타자가 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여자의 자주적 성공은 그녀의 여성성과 모순된다. 이 점에서 남자들의 감수성과 섹슈얼리티마저 변해 버릴 가능성이 아주 짙다. - P378

우리가 희망해야 하는 것은 현재 새로 태어나는 상황을 남자들 쪽에서도 기탄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비로소 그 상황을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라포르그의 기원이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오 젊은 처녀들이여, 그대들은언제 우리의 형제, 우리를 착취하려는 저의 없이 우리의 친한 형제가 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 서로 진실된 악수를 하게 될 것인가?" 그러면 "남자만으로 인해 여자위에 맹위를 떨치는 운명의 무게 아래서 멜뤼진 역시 더는 짓눌리지 않고, 해방된멜뤼진…"이 "자기의 인간적인 기반을 되찾게 되리라. "남자 - 지금까지는가증스러운 - 가 동의함으로 해서 여자의 끝없는 속박이 풀리고, 여자가 자신을위해 자신에 의해 살게 될 때," 그때 여자는 완전히 한 인간이 될 것이다. - P379

페니스는 남자아이가 우월감을 끌어내는 직접적 특권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아니라, 반대로 페니스에 대한 높은 가치 부여가 두 번째 이유離乳의 가혹함에 대한 하나의 보상 - 어른들에 의해 고안되고 아이가 열렬히 받아들인 - 같이 보인다. 그렇게 해서 남자아이는 이제 더는 아이도, 여자아이도 아니라는 아쉬움으로부터보호를 받는다. 이후 그는 자기 성기 속에 자기의초월과 자랑스러운 주권을 구현하게 된다. 여자아이의 운명은 아주 다르다. 어머니와 유모들은 여아의 생식기에 대해 존경심도 애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은 표면밖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은밀한 기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여아는 성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여아는 이 부재를 결핍처럼 느끼지 않는다. 그녀의 신체는 그녀에게 당연히 하나의 완전체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아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여러 요소가 복합되면, 그녀의 눈에 보이는 이런 차이가 열등함으로 변형될 수 있다. - P394

현대 서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쭈그려 앉고, 남자들은 서서 보는 것이 관례다. 이런 차이는 여아에게 가장 놀라운 성적 구분이다. 소변을 보기 위해 여아는 쭈그려 앉아서 엉덩이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숨어서 일을 봐야 한다. 그것은 부끄럽고 불편한 속박이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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