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결혼한 여자는 사유재산제에 고의로 희생됐다. 남편이 쥐고 있는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자의 예속이 더욱 엄격해진다는 것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의 종속은 언제나 부유한 계급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오늘날도 부유한 지주 계급 안에서 가부장제 가족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남자는 자신이 사회적·경제적으로 강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더 권위적인 가장이 된다. 반대로 공동의 빈곤이 부부 관계를 대등하게 만든다. 여자를 해방시킨 것은 봉건제도도 가톨릭교회도 아니다. 가부장제 가족에서 진정한 부부 중심의가족으로의 이행은 농노제에서 출발했다. 농노와 그 아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고, 오직 그들의 집과 가구와 도구만을 공유할 뿐이었다. 남자는 재산이 전혀 없는 아내의 주인이 되려고 애쓸 이유가 없었다. 반면에 그들을 결합하는 노동과 이해관계가 아내를 반려자의 지위로 승격시켰다. 농노제가 소멸하여도 빈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등한 부부 관계는 농촌의 작은 공동체와 장인들 사회에서 볼 수있었다. 아내는 물건도 하녀도 아니었다. 그런 것은 부유한 남자의 사치인 것이다.
가난한 남자는 자기를 배우자에게 결부시키는 관계의 상호성을 경험한다. 아내는 경제적·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노동 속에서 구체적인 자율성을획득한다. - P161

유럽의 모든 법전은 여자에게 모두 불리했던 교회법과 로마법 그리고 게르만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나라가 사유재산제와 가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런 제도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 - P163

이 시대에 가장 단호한 페미니스트는 1673년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은 저서 『양성평등에 관하여De regalité des dense sexes」를 간행한 풀랭드 라 바르François Poullainde la Barre(1647~1723)다. 그는 남자들이 강자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남자들에게 혜택을 주었고, 여자들은 습관적으로 이런 종속을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여자들은 단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유도, 교육도, 따라서 과거에 여자들이 한 일을 가지고 여자들을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열등하다고 가리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부학상의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의어느 것도 남자들을 위한 특권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풀랭 드 라 바르는 여자들을 위한 탄탄한 교육을 주장한다. - P178

18세기의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의 이상은 여자들에게 유리했다. 여자들은 철학자 대부분에게 남성과 동등한 인간존재로 보였다.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여자들의 운명의 불공정성을 고발했다. 디드로는 여자들의 열등함이 대부분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간주했다. 그는 "여성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동정하오!"라고 썼다. "온갖 관습 속에서 민법의 잔혹성은 여자들에게 등을돌리고 자연의 잔혹성과 결탁하고 있다. 여자들은 지적장애인처럼 취급되었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몽테스키외는 여자들이 가정생활에서 남자들에게 예속되어야만 하는데, 모든 것이 여자들에게 정치적 행동을 하도록 준비시킨다고 역설적으로 평가했다. "여자들이 집주인이 되는 것은 이성과 자연에 반하는 일이다.(…) 여자들이 제국을 통치하는 것은 이성과 자연에 반하는 일이 아니다."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etitus(1715~1771)는 여자를 열등하게 만드는 것은 불합리한 교육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달랑베르Jean Le Rond d‘ Alembert(1717~1783)는 이 의견에 동의했다. 한 여자, 시레 부인에게서 경제적 페미니즘이 수줍게 나타나기 시작하는것을 볼 수 있다.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1740~1814)는 거의 유일하게 저서 『파 - P179

리의 풍경』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분개하고, 여성 노동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1743~1794)는 여자들이 정치적 생활에 접근하기를 원했다. 그는 여자들을 남자와 동등하게 생각했고 전형적인 공격에 맞서 여자들을 변호했다. "여자들은 (…) 본질적으로 정의감이 없고 양심보다 감정에 따른다고 한다. (…)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것은 천성이 아니라 교육이며 사회생활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여자들이 법률로 예속되면 될수록 그들의 세력은 더욱더 위험해졌다. (…) 만일 여자들이 그 세력을 지킬 이유가 적어진다면, 그리고 그 세력이 여자들을 방어하고 억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수단이 아니라면 그 세력은 작아질 것이다." - P180

부르주아 여성은 자기의계급적 특권을 중히 여기기때문에 자기가 묶인 사슬에 집착한다. 그녀는 여성의 해방이 부르주아 사회를 약화할 것이란 말을 끈질기게 들어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남자에게서 해방되면그녀는 노동해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사유재산에 대해 남편의 권리에 종속된 권리밖에 가지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재산이 없어지는 것을더욱더 개탄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노동자 계급의 여자들과 아무런 연대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직물 짜는 여공보다 남편이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남편의 이익이 곧 자기 이익이다. - P186

여자는 가정을 벗어나 공장에서 생산활동에 재참여했기 때문에 선사시대 이래 잃어버렸던 경제적 위세를 다시 쟁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변혁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계였는데, 남녀 노동자의 신체적 힘의 차이를 기계로 많이 해소했기 때문이다. 산업의 갑작스럽고 비약적인 발전이 남자 노동자의 노동력보다 현저히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으므로 여자들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운명을 변화시키고 여자를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여는 19세기의 대혁명이었다.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