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정상입니다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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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책을 읽어 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한다. 기대하는 인생은 언제 오려는지, 아직 크게 변한 건 없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의 위로나 지혜는 얻어간다. 특히 심리책에서 많이 얻어 갔다. 덕분에 신간 출판된 심리학책을 죄다 읽은 해도 있었다.

 

리뷰를 쓰려고 검색을 하다 보니, 하지현 교수를 꽤나 좋아했나보다. 전작을 거의 다봤다. 가장 마지막에 본 책은 올해 본 <엄마의 빈틈>이었다.

 

p.293 부모들은 흔히 아이들과 놀아줬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런데 사실 부모들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기는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 때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닐까. 아이들과 놀아준것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함께놀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놀 시간을 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나마 여유가 생길 때도 부모와 시간을 보내려 하진 않는다.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둬야 나중에 외로워지지 않는다. 지금도, 앞으로도 가족은 함께 놀아야 한다.

 

좋은 책이었는데, 리뷰는 쓰질 못했다.

 

올해 초 하지현교수의 벙커 샘플강의를 들었다. 강의 때도 유용한 팁이 많아서 두 번 청취를 했었는데, <그렇다면 정상입니다>로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구어체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었다. 이유는 사연에 대해 너무 몰아세우지 않고 해결책을 부드럽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몇 가지를 얻었다. 예전엔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점점 사람 챙김이 싫어지는 메커니즘도 찾았다.

 

p.174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는 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편안한 사람, 그런 친구가 난 진짜 친구라고 생각한다.’ 참 공감이 가요. 정말 편한 친구를 만나면 얘기 좀 하다가 각자 핸드폰 보고, 한 살마은 저기서 야구 중계 보다가, 그런데 말이야 하면서 얘기하고, 그래도 전혀 어색하거나 서로 배려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30분쯤 그거 알아?’하고 얘기하다가 또 잠깐 맥주 한 잔 하기도 하고, 핸드폰 들여다보기도 하고, ‘나 노트북 꺼내서 일 좀 할게하다가 또 얘기하고...... 그렇게 두세 시간 같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도 있죠. 근데 그런 친구를 만나기가 참 어려워요. 이분도 그런 친구를 못 만나보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친구 사이도 있을 거라는 걸 상상을 못하시는 것 같아요. (중략) 두 번째, 대화가 끊어지는 걸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대화가 끊어지면 저 사람이 나와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기 쉬워요. ‘내가 재미없나?’ 근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대화가 끊어지고 잠깐 침묵하는 순간은 사실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거고, 친구 사이에서는 그걸 인정하자는 겁니다.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요. 대개 비즈니스 미팅에서는 20초 정도 얘기가 끊어지면 서로 털고 일어나자는 사인이죠. 핸드폰 꺼내면서 다음에 또 봅시다, 연락드릴께요이게 딱 돼요. 근데 친구 사이에서 생기는 침묵의 순간을 견디는 능력은 사실 내가 지루해서 그런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이해해야 가능하죠. 저 친구가 조용히 있어도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p.188 [자기 레퍼토리를 던지는 사람은 조심하는 게 좋다] 이런 친구가 있어요. 두어 번쯤 만났는데 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어. 나 입양됐어. 사실 내가 2년 전에 애를 지웠거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주 친하거나 정말 가족끼리고 얘기 잘 안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퍼스널 시크릿(personal secret)이라고 할 만할 이야기를 나한테 던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나는 무척 부담스러워지죠. (중략) 쟤가 매번 스테이크를 사주면 나도 가끔 돈가스는 사줘야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 마음 안에 부채가 있는 게 싫거든요. 저 사람이 자꾸 나한테 선물하고 밥을 사주면 나도 뭐 하나 해주지 않으면 너무 불편한 거예요. 좋은 게 아니고. 우리 마음은 항상 동등하고 싶거든요. 그걸 마음의 빚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라고 해요. 문제는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레퍼토리가 있는 사람들이죠. 자기가 엄청 고생했고 괴롭게 살아왔다는 레퍼토리를 만들어요. 두세 번 만났는데 그 얘길 해요. 이 사람은 별로 상처가 아니에요. 그 얘길 공개하는 게. 그리고 알고 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요. 다만 꽤 수위가 높아서 나만 알겠지하고 다들 얘길 안 하고 있을 뿐이죠. 그럼 이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이 사람의 정보를 알게 되겠죠. 그러면 이 사람의 감정이나 비밀을 통해 자기랑 엮을 수가 있어요. 그런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그건 좋은 방법은 아니죠. 하지만 그런 게 익숙한 사람도 있어요. 이런 분들이 그런 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있죠. 마음을 열었다는 게 별 게 아니라 남한텐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시크릿들이 몇 개 방출된 거예요. 근데 저쪽에서는 뭐 이거 가지고? 별 것도 아니구만. , 이런 건 지나가는 개한테 얘기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중략) 나도 뭔가 비밀을 얘기해줘야 될 것 같은 욕망이 생기거든요? 그걸 참아야 돼요. 안 참으면 진짜 후회해요! 집에 가서 잠이 안 올 거예요. 큰일 나는 거예요. 그걸 공유하게 되면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이 사람을 통제 할 수 없게 되잖아요. 그럼 얘가 그 비밀을 언제 어디다가 어떤 식으로 폭로할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오랜 임상경험에서 오는 실제 예시들도 좋았다. 업으로 삼는 일로, 책도 쓰고 강연도 하다니 하지현이란 사람 참 좋아 보인다. 이게 정신과 의사의 부수적 즐거움인지 모르겠다. 타과 의사 중 책 잘 쓰는 사람이 딱 두 사람 떠오르는 것에 비하면 정신과 의사 책은 많이 떠오른다.

나도 내공이 쌓이고, 이 길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열심히 읽고 쓰는 수 밖에.

 

 

 

Ps. 두 분, 외과 의사 박경철과 기생충학 서민교수 모두 내가 대학생때 부터 뵜던 분들이라 그들의 글은 무조건 만점이다. 그런데 예전만큼 그 분들의 책을 출간 때에 맞춰 읽지 못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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