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 들었어요 대학병원 건강교실 5
이관우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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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써의 소신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글이 첫 장에서부터 나온다. 서양의학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준 선교사 알렌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 시작이다. 그 장을 읽으면서 이 책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도 출판된, 거기다 대학출판사가 발행한 책이라 걱정을 좀 했었다. 그러나 어려운 내용은 전혀 없고, 누구나 읽을 수 있을 만큼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2년 전 수술실 실습을 돌 때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생겨버릴 정도다.


수술과 마취의 역사에서부터 수술실에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엮여 있다. 이 책의 장점이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히 설명해준다는 것에 있다. 어렵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씌였다. 특히 마취과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는 이는 외과의사지만, 수술을 결정하는 사람은 마취과의사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긴 했었다. 

마취과 의사들은 인간의 의식의 화학 요법사들이며, 통증에 대한 기능사들이며, 삶과 죽음의 둑길은 끊임없이 오가며 환자들을 인도하는 안내자들이다. 그들의 치밀한 눈길에 의해서 환자의 혈액과 뇌 속으로 망각의 안개가 흘러들어가고 또 그들의 단 한 번의 실수에 의해서 환자의 정신은 영원히 떠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중략) 나는 마취과 의사는 외과 의사에 소속되어 조종을 받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마취과 의사가 되려면 그러한 조종을 받는 느낌을 극복해야 할 강인한 정신을 가진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을 그 오묘한 마취의 과학으로 계획하고 연출하는 연극에 외과 의사들을 배우로 쓰는 것처럼 여기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그들의 천연덕스런 우월감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p.232~233)


2일 만에 야금야금 다 읽어버렸다. 의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하다. 특히 수술에 대한 경험이나 가족 중 누군가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수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얼굴은 수술용 모자와 마스크로 가리워져 있고 가슴에 이름표는 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그의 얼굴이나 이름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신이 그를 기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마취과 의사이다. (p.235)


지독한 수술의 고통 가운데서 잠들게 하는, 깊이 잠든 사이 생명의 문고리를 지켜주는 마취과 의사들의 숨은 노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무미건조하게 리뷰를 쓰고 있다. 어떻게든 책은 챙겨 읽어야겠는데, 주어진 시간은 넉넉지 못하다. 그래서 리뷰가 더 소홀해지는 것 같다. 병원생활은 사람을 진지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진지한 것 보다 허덕이게만 한다. 그래서 더욱 저자의 글이 좋아 보이나 보다. 힘들다고 투덜대더라도 임상에서 일하는 보람을 얻는 저자를 보니 기분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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