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콩갈다 -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19년 인생 여행기.박웅현 크리에이티브 교육법
박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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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길다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 때는 등굣길 버스에서 뿐이었다. 우울했던 청소년기에는 절실한 게 없었고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새삼 ‘시간’이 절실해 이유는 책 때문이다. 재미있는 책은 많은데 챙겨 볼 시간은 없고, 봐야할 책 앞에선 이해력이 딸린다. 그 책들이 고전 인문학 책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전 인문과 뒹굴며 성장한 아이들을 볼 때면 부럽다. 경쟁할 이유가 없는데도 조바심이 든다.

여기 태생부터 인문학으로 샤워를 하고 태어난 아이가 있다. <인문학으로 콩갈다>를 쓴 박연이다. 아버지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쓴 박웅현이다. 저자가 <인문학으로 콩갈다>로 제목을 지은 이유는 아버지 책을 패러디해서란다. 여기서 ‘콩갈다’로 쓴 표현은 콩가루 집안을 의미하는데 이 의미가 흥미롭다. 저자에게 가족이란, 나이 많은 친구 둘과 콩을 키우고 갈며 생활하는 것이다. 자신은 아직 엄마 아빠만큼 센스 있고, 똑똑하고, 어이없게 웃기고, 엽기적인 친구를 만나지 못했단다. 가족 전부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콩가루라 빗대어 쓴 것이다. 콩가루인 덕분에 세대차를 느끼지 않고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며 프롤로그를 시작한다.

책은 크게 4파트로 구성됐다. 첫째 파트는 콩가루 집안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루이 14세 버금가는 권력가 엄마와 제 3신분인 아빠를 소개 하고 있다. 여기에 ‘앙시앙 레짐’을 곁들이고 있는데,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내가 가정을 꾸린다면 이런 구조로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자신을 키운 것의 8할은 부모님 이기심이라는 걸 이야기 하는 내용이 있는데 아버지의 쿨한 발언이 참 시원했다.

나를 키우는 것 역시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것이다. 나만큼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잘하는 장난감은 없다면서, 매일매일 변하는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것은 지극한 이기심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p. 45)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쿨 할 수 있다. 책 전반에 아버지 박웅현의 교육철학과 쿨함이 많이 비친다. 이런 부모를 만났다는 게 저자의 큰 복이다. 그래도 아직 청소년은 청소년, 학업에 대한 부담과 고민이 많다. 외고를 준비하다가 외국 학교로 진학하는데, 외국에서도 겪게 되는 경쟁을 통해 배운 것을 두 번째 파트에 써놓았다. 저자는 인생은 카르페 디엠이라고 외친다. 잘하고자 하는 이기심과 앞선 의욕 때문에 좌절을 겪기도 하는데 우울하게 쓰지 않아서 좋았다.

세 번째 파트와 네 번째 파트는 섞여 있는데, 가족 세계여행과 낙관주의를 썼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가훈이 자신있게’라는 글이다. 여기서 자신에게 ‘자신있게’란 생각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가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르쳐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이야기한다. 주눅들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이라면서 말이다. 그 예로 부모님이 비싸고 좋은 호텔과 식당을 데리고 다니며 장기 투자를 했다고 하는데, 이건 내 경험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학원이 아니라, 여행의 사치가 더 필요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삶은 순간의 합이란 걸 이야기 하는데 어쩜 이리 야무질 수 있는지 감탄이다. 자신이 스스로 깨우친 생각인지, 글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고전들에서 발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깜찍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즐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결국,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잊은 채 불행하게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중학교 3년 내내 외고를 준비하며 보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각자가 추구하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인 것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인데 안 좋을 것이 뭐가 있겠나. 즐기기만 하면 된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과정을 즐기며 하나하나의 일에 집중하고 가치를 찾는 게 더 재미있게 사는 방법 같다. 우리의 삶은 순간의 합이다. 우리의 인생은 앨범이다. 하나하나, 재미있고 소중한 순간들을 사진처럼 모으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다. (중략) 어렸을 때 집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던 순간, 3박 4일 엄마 아빠랑 안동에 놀러 간 순간들 (중략) 이 모든 순간들이 중요하다. (p. 259)

20대 후반에야 이걸 깨달은 난 머리만 긁적였다. 이게 인문학의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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