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 이사를 했다. 새집에서 직장까지는 출퇴근시간이 1시간 반이나 소요된다. 전에는 걸어서 15분이였다. 그러나 만족한다. 강제적이지만 긴 출퇴근 시간 덕에 책을 더 보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걸리는 문제가 하나 있다. 새집으론 내 책이 다 못 들어간다. 다시 볼 것도 아니었지만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 다시 이사를 가게 될 때에는 책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좋은 집에서 살아야겠다. 좋은 집에서 살려면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거다. 넓고 깊은 책장을 가지고 싶은데 경제력이나 독서력이나 뭐하나 갖춘 것이 없다.

그래서 책 읽는 것 밖에 없다. 책으로 마음을 추르고 되돌아보고 나아가는 것,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최선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을 읽었다. 나를 최규석의 팬으로 만든 <습지 생태 보고서>의 청소년 버전이다. 책은 고3 강원빈의 미대입시가 큰 틀이다. 거기에 가난한 학생들의 현실, 돈으로 해결되는 대입 경쟁, 청소년 착취 아르바이트 등이 섞여있다. 최규석의 유머가 곳곳에 묻어나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씁쓸한 생각이 안들 수 없다. 
  

가난한 재수생으로 형편이 힘듦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는 류은수에게 동생이 찾아온다.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p. 82)다. 가난한 이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을 어린 학생의 입으로 말하게 하다니, 잔인하다. 꿈도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꿈을 못 꾸면 더 가난하게 산다는 걸 모르고 하는 이야기 일까.

미술학원 선생이었던 태섭의 마지막 송별회에서 강원빈이 보여준 눈물에서, 책 제목을 바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기엔 좀 ‘애매한’에서 울기엔 좀 ‘억울한’으로. 
 

책은 대입 이야기지만, 대입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 3때만 이런 현실을 접하는 게 아니다. 사회에 나오면 더 노골적이고, 불합리한 경쟁시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린 주인공이 하는 말이 오랫동안 여운에 남았다. 
 

돈도 재능이라고....(p. 123)
 

맞잖아. 머리 좋으면 놀아도 공부 잘하고 재능 있으면 그림도 금방 잘 그리고.... 예쁘면 더 살기가 편하고....(p. 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