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직업에 관한 고찰 1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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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2010학년도 대학수학 능력 시험이 끝났다.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나도 수능을  치룬 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미안할 만큼 아무 느낌이 없었다. 8년 전에 나도 수능 시험장에 있었을 텐데, 그 때의 기억보다 입사 때 본 면접이 더 생생하다. 아마 될 되로 되란 식의  어린 학생과 직장의 중요성을 아는 사회인의 태도차일 것이다. 그 때 건성으로 본 수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미련은 없다. 좀 더 고득점을 받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 같다. 당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으므로 결과는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을 읽었더라면 맨땅에 헤딩하기를 안전모라도 갖추고 했을지 모르겠다.

직장생활 해보니까 알겠다. 사람들이 왜 직장에 나오는지 말이다. 첫째 이유는 밥벌이다. 사회적 의무니 자아실현 따위를 언급할 일도 없었지만, 가장 큰이유가 밥벌이란 걸 말하지 않아도 안다. 둘째이유는 최근에야 알기 시작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와 성취감 때문이다. 직장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보니 알겠다. 누구보다 나도 잘 살고 싶고,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내가 되고 싶기에 오늘도 직장에 나간다.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맨땅에 헤딩해가며 고민했던 것 들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진로 탐색책이다. 진로에 대해 생각해볼 일 많은 학생은 물론 이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도 유용하다. 다시 자신의 직업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난 내 직업이 싫었다. 몸이 고된 것은 둘째치고, 주변동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격장애자도 있었지만, 태반이 병원이 지겹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직업의 특성상 취직과 이직이 자유로운데, 덕분에 친구를 비롯 후배 여러 명이 전직과 이직을 했다. 혼자 남아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니, 이 짓 말고는 잘하는 게 없었다. 그래서 기왕 하는 거 잘해보자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책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많은 간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고. 그게 직업에서 성공을 얻는 길이란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불친절한 의사와 친절한 택시 기사를 비교한다. 불친절한 의사보다는 친절한 택시기사가 낫다고 말한다. 참 와 닿는 말이다. 친절한 변호사와 친절한 택시 기사는 성공이라는 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주변으로부터 존경받으란다. 의사라서 존경받는 게 아니라 친절하고 유능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라고 한번 더 강조한다. 친절하고 유능한 구멍가게 아저씨도 존경을 받으니 누구에게나 직업의 성공은 열려있단다.
 
책은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를 시작으로 인간은 왜 일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보고,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적어놓았다. 어려운 말 하나도 없다. 정말 쉽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중에서 일해야 얻게 되는 것의 목록과 세상은 불평등하다는 걸 받아들이라는 내용에선 은단을 넣은 마냥 입안이 싸하고 화했다. ‘내가 이걸 알기위해 그동안 맨땅에 헤딩을 했구나.’ 싶은 실망감과 더 이상 헤딩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올해 수능을 친 사촌동생이 있는데 그녀에겐 이 부분들이 어떤 의미로 읽혀질지 모르겠다. 아마 꽤나 부정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도 그땐 그랬으니 참고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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