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다 읽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흡인력 있었다. 어린 아이에게 달래 듯 써내려간 글이었는데, 청자인 그 아이는 이해하기 힘들 반전에 반전이 숨겨져 있다. 소설 속에서 화자는 주인공인 막스 티볼리이고 청자는 어린 새미와 여러분으로 지칭되는 독자다. 흥분과 차분이 교차되어 자신의 일생에 대해 들려주는데, 다 읽고 나니 어린 새미를 위한다기 보단 기막힌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싶다.

주인공 막스는 일흔 살 늙은이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부유한 집안 덕에, 이 기형적 회춘(?)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자란다. 그러나 집밖으로 나갈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약속을 하나 받는다. 실제 나이완 상관없이 남들이 보는 나이대로 행동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어야 말이지.

막스가 16살 때 생부 아르가르가 미스테리하게 사라진다. 아비의 부재로 가세가 기울자  아랫집에 세를 놓는데, 거기서 평생의 사랑 14살의 앨리스를 만난다. 하지만 중년의 모습을 한 17살의 막스는 앨리스의 엄마 레비 부인과 통하게 된다. 정작 열망하는 앨리스에겐 제 나이를 고백하는 바람에 첫사랑은 황망히 막을 내린다.

2부에선 이혼녀로 돌아온 앨리스가 막스와 우연히 같은 사고를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우연한 만남을 운명의 만남으로 돌리려 막스의 노력은 눈물겹다. 서로에게 나이가 자연스레 맞춰진 때, 둘은 결혼하고 큰 행복에 다다른다.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유일한 호사는 당신의 미소, 상쾌함을 주는 당신의 그 미소를 구매하는 일이었소. p.266

그러나 막스의 결혼은 오래 가지 못한다. 막스는 결혼을 위해 실종된 아버지로 신분위조를 했었고,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늙어보이도록 머리염색을 하고 옷을 구식으로 신경 써 차려입었지만 앨리스의 애정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숨겨둔 펜던트가 발견되면서 비밀탄로가 난 막스는 자기고백을 앨리스에게 또 하고 만다. 사랑을 붙잡기 위해 한 고백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함 뿐이었다. 참 처절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천형은. 

막스는 죽기를 마음먹고 입대했으나 전쟁영웅만 됐고, 부상으로 실려 간 병원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병원에서 요양한다. 폐인 삶을 살다 친구 휴이가 전해주는 소식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바로 앨리스와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할아버지가 된 휴이와 꼬마가 된 막스는 같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당도한 곳엔 4번째 결혼으로 들뜬 앨리스와 개구진 새미가 있었다. 막스와 휴이의 결론은 좀 충격적이다. 그리고 휴이의 궤적이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작가 앤드루 손 그리어의 상상에 감탄하고 뜨거운 필력에 감복했다. 주인공 혼자만 나이를 거꾸로 먹는 설정은 신선함을 넘어 서늘했다. (소설을 읽을 당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몰랐다.) 평범한 성장과정도 생과의 전투였고, 어린 마음에 겪을 남들과 다른 고통이 걱정 됐다. 거기에 역순회하는 일생을 걸고 사랑을 쫒는 막스의 행동은 읽는 이를 뜨겁게 한다. 책의 첫 페이지에 막스가 이런 문장이 써놓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막스는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비틀어 보자면 앨리스의 존재로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된 사람인 것 같다. 막스 스스로의 삶에서, 자신을 가장 소중히 했다면 결론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막스의 사랑, 앨리스는? 자신의 삶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영특한 여성이셨다.

막스가 6살 때, 우드워즈 가든스로 가족 소풍을 간다. 그 곳에서 재주부리는 곰과 처녀 비행하는 열기구도 보고, 평생의 친구 휴이도 본다. 공원장소만 쓰일 줄 알았던 우드워즈 가든스는 계속 나온다. 휴이를 짝사랑한 앨리스가 고백의 장소로 쓰고, 세 남녀의 재회 장소로 활용 된다. 소설은 공원의 퇴락까지 보여주는데, 열기구 비행은 사고가 나고 늙은 동물들은 사살된다. 공원이 쇠락이 시간의 덧없음을 보여주고, 셋이 만남으로써 보이는 긴장의 장소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공원의 흥망성쇄가 복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s 1. ‘자연스레 맞춰진 때’라, 내가 쓰고도 왜 이 문장에서 놀랐다. 사랑하더라도 서로의 ‘때’가 맞지 않으면 헤어진다는 ‘시절 연인’이라는 말,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때’가 된 사람끼리 한다는 격언과 통하는 것 같다. 이놈의 ‘때’를 기다리느라 나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ps 2. 난 아직도 팬던트 목걸이에 새겨진 1941의 의미를 모르겠다.

ps 3. 이 책과는 약간 다르지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왔다. 젊어지는 브래드 피트를 보면서 감탄하고 왔다. 그러다 오늘 <벤자민 버튼..> 원작 소설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라딘에 감탄한다.     비교하면서 읽어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