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심리학 라디오 - 사랑.가족.시대에 상처받은 이들의 리얼스토리
권문수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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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의사소통에 능하지 못하다. 그 덕에 인간관계에 실수와 상처가 많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그 정점이며, 내 주름의 원흉이다. 아직까지 칼을 품고 있는 이도 있다면 말 다했다. 억울해서라도 수간호사까지 해버리고야 말겠다는 게, 내 자위의 전부다. 진급을 위해 준비한 건 없고, 독을 뿜어봤자 다시 돌아올 독이 무서워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책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나곤 했는데, 그 책에서 해독제를 찾게 될 줄이야. 해독제는 이렇게 생겨먹은 걸 인정해버리기 였다. 맞지 않는 사람한테 억지로 잘 보이려 애쓸 필요 없고, 그 시간에 나한테 잘하기로 마음먹으니 한결 가벼워졌다.  

이곳에서 일한지, 4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후임의 직장생활 고민에 조언을 해줄 정도가 됐다. 조언의 바탕은 그동안 읽은 심리학책이다. 매년 읽어본 통에 이젠 다 아는 내용이 돼버렸는데도 매년 새 책을 사게 된다.

오늘 읽은 책은 권문수의 <생중계 심리학 라디오>다. 전작<그들에게 무슨 일 있었던 걸까>를 재미있게 읽어 이번에도 보게 되었다. 저자는 미국에서 임상상담학을 전공한 테라피스트이다. 병원과 자신의 개인 클리닉에서 만난 내담자에 대한 내용이 주다. 이상행동과 치료경과, 저자의 생각이 중간 중간 섞여 흥미롭게 읽었다.

그동안 읽어 온 심리학책의 다수는 에세이와 치료책이었다. 비교를 하자면 에세이는 ‘나도 그런데’라며 공감을 얻는다. 반면, 이런 임상적 내용이 든 심리 치료책에선 ‘그래도 난 미치지 않았어’라는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은 임상 심리치료책이지만, 공감까지 같이 끌어낸다. 저자의 트라우마 고백 때문이다. <유리로 만든 가슴을 가진 아이>편에서 자신의 정체성 장애와 강박증, 불안장애를 고백한다. 이 내용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성공한 듯 보이고, 자기 분야로 책도 내고, 미국인을 상대로 상담업무를 하는 게 부러웠나보다. 미국 안착 성공배경엔 그의 강박증이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청소년기를 넘어서면서 부터 트라우마를 극복했고, 이런 경험이 환자 이해에 도움이 됐다. 많은 전공 중에 임상상담학을 전공한건 이런 극복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박증을 긍정적인 강박증으로 대체하는 내용, 자살할 마음이 드는 순간 테라피스트에게 전화하게끔 하는 내용 등이 흥미로웠다. 자살할 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기 때문에  상담원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그로인해 자살이 예방된다니 놀랍다. 저자가 일하는 병원엔 이 프로그램 때문에 아무도 자살이 하지 않았다고 하니 감탄할 뿐이다. 우리나라에 노인 자살율이 세계1위로 해마다 증가한다고 하는데, 현 노인정신보건 시스템에도 접목할 수 있을까? 글쎄, 그쪽에서 일해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회의적이다. 올 7월에 시행될 노인 장기요양보험도 이해 부족인 사람이 더 많다. 복지부가 노인의 정신건강까지 챙길 여력이 있을까 싶다.

미국의 정신 장애자 지원 시스템이 부러웠다. 주변에 정신장애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미국의 시스템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도 순간 들었는데, 정초의 핫 이슈 ‘사이코패스 강호순’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정신과엔 일해 본 적이 없어서 가볍게 읽었는데, 이쪽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일 듯 하다. 그리고 환자의 환상까지 그대로 이해해준다는 것에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한때 데니스에게는 자신만의 세상이 있었다. 환상 속에서 신디라는 이름의 애인과 사귀었고, 잠을 잤으며, 프러포즈를 했고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데니스는 그렇게 자신의 가족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했다. (중략) 증세가 좋아지면서 그의 환상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데니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환상 속의 아내인 신디와 세 명의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세션 중에 일어난던 일이다. (중략)

“무슨 말을 해야 해요?”
“그냥 사랑했다고 말해줘.”
“신디, 사랑해. 아이들아, 사랑해 사랑해......”


젠장, 이게 뭐야. 나는 괜스레 눈물이 나는 걸 참느라 고생했다. 유리로 만든 가슴의 소유자인 데니스는 사무실이 떠나가라 통곡을 했다.  (p.28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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