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극 당첨됐으니, 내일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그 내일이 오늘이 되었을 때 동생과 나는 혜화역 1번 출구 앞에 서있었다. 같은 사이트, 같은 날에 응모 했었는데 나는 매번 떨어지고, 동생은 이번 회까지 해서 당첨 2회째를 맞고 있었다. 동생은 보무당당하게 앞서 나갔다. 첫 번째 당첨 때는 <환상동화>를 보러 문화공간 이다를 갔었고, 이 번 회에는 신연 아트홀이었다. 길 찾느라 두리번 거린지 3분도 되지 않아 매표소를 찾았다. 광수가 싱긋 거리는 포스터 앞에서, 동생은 싱긋 거리며 말했다.

“****에서 당첨돼서 왔는데요”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그런 사이트는 처음 듣는다는 것이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나서야 동생이 관람일자를 일주일이나 앞서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 젠장. 전에는 같이 볼 사람 없어서 누나랑 봤는데, 이번에는 볼 사람이 있어도 날짜를 잘 못 알아 누나랑 보는구나.”

그렇다. 내 동생은 남동생. 놈의 누나 년은 매번 낙선을 하면서도 동생이 당첨될 때마다, 당첨자와 똑같은 해택을 보는 사람이었다. 놈에게는 같이 연극 볼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이라 같이 못 본 것이었다. 당첨날짜 대로라면 생각했었던 사람과 같이 왔었을 수도 있었던 모양 이다. 동생에게 막심한 위로와 감사의 말을 건네며 손에서 초대권을 낚아챘다. (다행히 매표소에선, 맹한 남매를 긍휼히 여겨 관람날짜를 당기게 배려 해주셨다.)

후회와 번민으로 괴로워하는 동생과 달리 만세를 부르며 들어간 나는 관람석 의자에 앉아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두 명의 연기자가 나오고서야, 농담을 멈추고 무대를 쳐다봤다. 무대는 도심을 배경으로 병원 내로 진행됐다. 늙은 의사로 분한 배우와 간호사로 분한 배우가 티격태격하면서 공연을 알렸다.

첫 장면은 주인공 광수와 아버지가 병원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첫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에 광수는 쑥스러워하며 말하기를 피한다. 이 쑥스러움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광수를 괴롭게 한다. 지현을 짝사랑하는 어린 광수는 지현의 생일날 선물을 산다. 그러나 막상 곰 인형 선물은 옆에 있던 숙자에게 줘버린다. 부자 친구 민혁의 큰 곰 인형에 소심해진 것이다. 지현은 광수의 곰 인형에도 관심을 보였지만, 광수는 그 관심이 쑥스러웠던 것이다. 엇갈림은 계속된다. 동창회 모임에서 자기가 짠 목도리를 돌려받고, 사랑한다는 카드도 숙자에게 주게 된다. 잘나가는 동창 민혁과 사귀게 된 지현을 보면서, 광수는 속앓이를 한다. 그 속앓이는 광수의 아버지 어머니 때부터 내려온 것이었다. 처자식들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술을 마시고 오는 아버지와 돈 모지라다는 말을 꺼내기가 힘든 어머니의 대화 한 자락이다.

술 먹고 귀가한 아버지에게 강아지 장례비를 너무 많이 썼냐고 어머니가 윽박지른다. 그때 아버지는 “집에 오면 누가 나를 반겨주느냐, 누가 내 이야기 들어 주느냐?”고 반문한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자식 같은 놈에게 그 정도도 못하느냐고 화를 낸다. 그리고 “내가 이 집에서 돈 버는 기계냐?”하며 버럭 목소리를 높히고 무대를 퇴장하는데 그 때 어머니의 독백은 이거다.

“당신을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그럼 저희는 돈 쓰는 기계로 보셨다는 거군요.”

개인적으로 연극 중에 가장 울림이 있었던 말이다. 기억력이 모자라 정확한 대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물까지 고였다. 눈물을 아예 흘린 신이 있는데, 광수가 지현의 병실침상에서 하는 울면서 잘못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신에서였다. 그때 끝말만 들은 지현은 오해를 하며 퇴장을 하는데 그 장면에서 쏟아버렸다. 촌스럽게 훌쩍거리기까지 했는데, <광수생각> 자체는 유쾌했다. 광수의 여동생 현수는 철없는 연애사를 읊어대며 웃기게 만들었고, 친구 민혁은 마요네즈 같은 느끼함으로 광수의 애정사를 섞어놓아 또 다른 재미였다. 머스타드 같던 친구, 숙자와 구일은 적재적소에서 나타났고, 곰삭은 된장같던 어머니 아버지는 숙자와 구일이 번갈아 연기를 하며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만화<광수생각>이 모티프였듯 장면 전환이 될 때 스크린으로 광수생각을 띄워줬다. 연극과 연관되어 있어 여운이 오래갔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많이 와 닿았고, 중학교 때부터 봐왔던 캐릭터를 이렇게도 보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연극을 보다가 눈물을 흘리고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이 훌쩍이는 모습까지 연기자들에게 보일까? 본다면 그들은 어떻게 느낄 까?’ 나는 눈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연극을 잘 봤다는 생각을 했는데, 연기자들은 이런 촌스런 관람객을 통해 자신의 연기를 흐뭇하게 생각하겠구나싶다. 연기자와 관객이 눈물과 웃음을 오가는 <광수생각>. 즐거웠고, 유쾌했으며 재미있었다. (동생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다만.)



사진은 연극 초대권. 날짜에 +7이 예정된 관람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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