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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라면 이렇게 한번 살아봐!
고산자 지음 / 마당넓은집(등대)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엔 부부이야기를 쓴 책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고혜정의 <여보, 고마워>는 그녀의 전작<천정엄마>보다 못했다. 전에 라디오의 부부사연을 모은 책도 봤었는데, 별 감흥이 없었다. 라디오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듣는 사연과 보는 사연은 달랐다.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들이 아님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별로였다. 그냥 밍밍하기만 했다. 캡사이신 송강희의 <내 남자가 바람났다>가 더 재미있었으니, 내 취향은 달콤한 결혼 이야기보다 위기의 주부들이 더 맞았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고등학생 때 본 홍승우의 <비빔툰>을 끝으로 끝나 있었던 거다. 한 때 골드미스에 열광하던 때도 있었으니 결혼 따윈 번거로운 과제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변했다. 담담하게 결혼을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전과는 달리 귀찮더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라졌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과 여유로움을 인정 한 거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걸 보여주는 책이었다. “나는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우리의 부부 생활을 한번 정리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로 첫 문장을 떼고, 고산자씨는 결혼 전후와 결혼생활에 대해 유머스러 하게 써놓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블로그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는 그의 일기라면 유명 블로거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가사분담은 시간 있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서 풍만함을 얻고자 살찌질 종용하고, 아내의 남자 친구 만들기까지 종용하는 데 치고 받는 대화가 재미있다.
풍만한 여자들은 포근하고 아늑해서 그 풍성한 몸에 얼굴을 파묻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어릴 때 엄마 젖을 만지면서 잠들었던 그런 느낌말이다.
“와, 저 여자 젖에 얼굴 한번 묻어봤으면 참 좋겠다.”
“그래? 할 수 있으면 해봐 그러다가 숨이나 콱 막혀 죽어버리게. ”(p.118)
그는 작은마누라를 얻어 달라고 하고 자신의 외도를 인정하는 쪽이었는데, 전혀 저질스럽게 보이 질 않았다.
“그래도 당신은 평생 날 안고 자잖아. 그 여자는 딱 하루만 나와 잔 건데 그렇게 매정하게 할 필요는 없었잖아. 그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아? 당신은 소유욕이 너무 강해서 탈이야. 사람이 나누면서 사는 맛이 있어야지.” (p.112~113)
‘내가 무슬림이나 몰몬교로 개종을 하든지 해야지. 이거 원 답답해서 살 수가 있나. 몇 년이면 몰라도 어떻게 한 남자 한 여자하고만 수십 년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p.166)
이 대화에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올랐다. 아! 유쾌한 사람. 유쾌한 이와 사는 그 아내가 부러웠다. 물론 그녀도 명쾌, 유쾌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음담패설을 넓은 아량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제 남편이 이런 책을 내는 대도 동의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편보다 아내가 더 대범한 사람같다.
책의 3장엔 부부의 성에 대해 할애를 했는데, 낯이 뜨거워지면서 보는 게 아니라, 웃는 낯으로 봤다.
살이 많은 배도 부드러워서 좋다. 배에 손을 얹고 자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지 몰느다. 나이가 들면 미운 정까지도 세월의 더께만큼 쌓인다더니, 이런 느낌은 아마도 육체적인 쾌감보다는 정신적인 푸근함에서 오는 안정감인 것 같다. (중략) 아내를 달아오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다. 엉뚱한 방법 같지만 실제로 부부가 얼마나 대화를 나누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친구들과 허물없이 나누는 그런 대화 말이다. 섹스를 하든 안 하든 집에서는 끊임없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습관이 필요하다. 물론 가벼운 스킨십과 함께 하면 더욱 좋고. (p.174~175)
결혼을 하면 지금보다 더 처절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을 한 적이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궁상스러운데, 같이 궁상을 떨어야 한다니 심히 심란했다. 같이 궁상을 떨더라도 이리 산다면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