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한 달 동안 뮤지컬만 세편 봤다. 어쩌다 보니 2주일에 1편씩 본 꼴이 되는데 게으른 내가 이렇게 많이 움직여 볼 줄 몰랐다. 말하지 않았던가. 원래는 뮤지컬이 뭔지도 모르는 쌩 촌년이었다고. VIP 티켓이 그렇게 값나가는 것인 줄도 몰랐었다. 뮤지컬 티켓을 로비로 받은 적이 있다는 그 분의 말을, 그 때는 몰랐다. 이젠 뮤지컬 중독이 어떤 것인지, 시즌마다 공연 표를 예매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힘든 일을 선택한 무대인들을 힘들게 하는 말인 줄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버겁다. 무리하고 있다.

이렇게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것도 곧 정리 할 것 같다. 개과천선, 로또대박이 없는 한 말이다. 어제는 책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건드려 버렸다. 이젠 마무리해야 하는 때가 왔다. 뮤지컬 관람기를 남겨 보는 것도 그 정리 중 하나다. 지금 내 꼴로 뮤지컬 보러 다니다간 종합예술이, 허영의 종합예술이 될 것 같다.

 삶의 무대에서 주연으로 올라보신 분만이 타인의 공연에도 박수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춤과 노래가 있는 화려한 무대에서든 자신의 거친 무대에서든 말이다. 나도 박수쳐주고 싶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나란 놈은 모질지도 못하고 화내지도 못하고 참기만 잘하는데 어느 날 보니 대기실에만 있었다. 뮤지컬을 어렵게만 생각했나? 그냥 즐기면 될 것을? 맞다. 즐기면 그만이다. 평생 맘 편히 뮤지컬 즐겨보면서 살고 싶다.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뮤지컬 관람기를 쓰면서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주절댔다. 처음에는 뮤지컬을 봤으니까 기록도 하고 자랑도 해보고 싶었다. 덕에 못난 사진도 올리고, 신분노출까지 해버렸다. 하지만 써나갈 수록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 게 낫단 생각이 든다. 꼴같잖은 뮤지컬 관람 글이었지만 빙긋이 웃으면서 썼었다. 올해부터 뮤지컬을 보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약간 서글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 이야기를 시작 하자면 작년으로 거슬러간다. 2007년 말, 나는 인사동의 어느 찻집에 앉아 있었다. 소개팅이었다. 상대는 나이차가 나시는 분이셨는데, 나이를 헛먹지 않은 따뜻한 분이셨다. 왜 아직도 장가를 못가셨을까 싶을 만큼.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니, 상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솔직히 좀 힘들다. 표내지 않지만 점점 흥미가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책은 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재미있는 사람은 그 분이 처음이었다. 자신의 무대에서 맞은 배역을 열심히 해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사업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 자신의 현재 이야기와 취미 이야기도 했다. 그 중엔 와인이야기도 있었고, 뮤지컬이야기도 있었다. 와인이 유행인 것은 알았지만, 당시에는 한 모금도 마셔보진 못한 터라 고개 끄덕만 했었다. 뮤지컬은 정말 좋아해서 로비티켓의 유혹까지 받았다고 했다. 관람 때만 함께하는 친구들도 있다며 웃었다. 나에게도 같이 보러 가지는 제안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뮤지컬 이야기를 했을 때, 광고에서 본 게 다여서 호기심만 들었을 뿐 진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흘러가는 이야기 흐름 속에 잠시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야기 중에 이럴 말을 하셨다.
“너 나만나려고 하는 게, 뮤지컬보고 와인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를 뭘로 보고 그렇게 생각하셨을까 싶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크게 화냈어야 했는데,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그대 모습그대로를 좋아해준 사람은 없었나 싶어 안타까웠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대로 부정해주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분은 아마 모를 거다. 당신과 뮤지컬을 보지 않았어도 계속 만나고 싶어 했을 거라는 걸.

트라우마 극복보다는 뮤지컬을 언제부터 생각했는가 돌이켜보니 그 분이 생각났다. 잘 사시는지 궁금하다. 독신주의 마***님도 장가를 가셨는데, 그분도 부디 좋은 짝 만나 행복한 뮤지컬을 보시길 빈다. 아직 못 만나셨다면 뮤지컬 보러 날 찾아와도 좋다. 좋은 뮤지컬 친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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