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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미술관 -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정혜신 지음, 전용성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 때 호기롭게 이 바닥을 떠난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사직은 현실에 안주해버린 나를 부끄럽게 했으며, 삶의 쉼표라는 걸 보여 주었다. 하지만 바깥세상도 만만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행보는 안쓰러웠으며 나의 노파심은 꺾길 줄 몰랐다. 그녀와 나는 친한 친구 사이.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것 밖에 없었다. “앞으로 다 잘될 거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잘 먹고 잘 살 것’이라는 의미로 손미나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선물로 주었다. 이후 나의 걱정을 잠재울 만큼 그녀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 같이 살았다. 새로운 직업도 가졌었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며 신나게 여행을 즐겼었다. 그녀를 통해 듣게 되는 바깥세상 이야기는 새롭기도 했지만, 이 곳과 다르지 않은 고루한 것들도 없지만은 않았다. “세상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그녀가 앞날을 걱정스럽게 말하면 ‘넌 용기 있는 녀석이야’로 일갈하던 때가 며칠 전이었는데 이젠 내가 그녀에게 위로 받을 것 같다. 어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나 그 정신병원 붙었다. 정신 전문간호사 할 것 같아”
그렇게 갈망하던 병원에 들어갔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하랴 싶다. 축하를 핑계로 <마음 미술관>을 선물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전용성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떠오르는 감상을 쓴 글인데 짧지만 좋은 글이 많다. 저자가 해석한 것을, 부러 내가 엇박을 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이고 그림이고 다 해석하기 나름이야”
‘솔직하게 말해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후렴구를 빼놓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더없이 후련하고 신나는 일이겠지만 곁에 있는 사람은 난감할 대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솔직함’이 책임을 전가하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의 한 정당한 이유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됩니다. 지나친 솔직함을 때론 미성숙의 한 증거이기도 한데 말이지요. (p.27)
"다리를 접어 모아서 가슴팍까지 끌어올리고, 머리를 숙여 무릎사이에 묻고...“
타인의 부재 속에서 홀로 몸의 ‘접촉 면적’을 최대한으로 넓히기 위한, 외로운 인간이 선택하는 무의적 자세입니다. 강력한 밀착과 연대를 자가 발전해내는 일종의 생존본능이기도 하구요,(p.53)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게 될 때 이 책 추천한다. 마음으로 주는 책 선물로 딱이다. 어렵지 않을 뿐더러 음미하기에 따라 새롭게 느껴지는 성찰과 위트가 매력적이다. 정신과적 해석과 전작들로 입증된 그녀의 느긋한 글 솜씨가 읽는 이를 편안하게 만든다. 마음 씀이 예쁜 친구와 따뜻한 차 한 잔을 함께한 듯한 느낌을 받을 거다.
ps.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 이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