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
폴 바비악, 로버트 D. 헤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난 4월, 로버트 D. 헤어의 <진단명 사이코패스>를 읽고 적잖이 놀랐었다. 책을 읽는 동안 대입되는 한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망에도 걸러지지 않는 자가 직접적이고 잠재적이므로 더 위험하다고 <진단명 사이코패스>는 말했다. 내가 떠올린 그 이는 범죄자는 아니다. 그 이의 행동이 나를 힘들게 할 뿐이다. 그러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니 그 이는 가해자였고, <진단명 사이코패스>는 더욱 흥미로웠다.

이후 ‘사이코패스’는 나의 협소한 세계관을 많이 확장시켜 주었다. 처음엔 주변인 모두가 의심스러웠다. 모두를 의심해대니 모든 것에 위축되었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죄책감을 가져왔다. 당혹스러웠던 것은, ‘내가 사이코패스는 아닌가?’하는 질문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 질문에 답을 구하니, 전보다 유연한 사고도 같이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한 숨 참고, 다시 책을 폈다. 그 때 접한 책이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책, 조지K. 사이먼의 <양의 탈을 쓰다>였고, 이번에는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였다.

책 서문에는 어설프게 주변사람을 사이코패스로 결정짓는 우는 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도 사이코패스를 처음 보고는 확신할 수 없단다. 훈련과 많은 경험이 축적된 전문가도 헷갈리는 판에 겨우 책 한권 읽은 걸 가지고 섣불리 생각 말란다. 난 섣불리 생각한 그 우매한 쪽이고,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를 읽고 또 놀라는 금붕어였다. 덕분에 새로이 사이코패스를 알게 되었고, 추가적으로 얻은 내용에 만족해했다.

평가하는 과정에서 사이코패스들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장차 먹잇감이 될 상대방이 얼마나 효용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사람 인격의 내면적인 작동 기제를 찾아낸다. 이런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사이코패스는, 나중에 속임수와 조종의 통로가 될 친근한 개인적 관계를 쌓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부자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사이코패스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사실 왕성한 의욕으로 불타는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보면 어떤 사람도 쓸모없는 사람이 없다. (p.121)

그리고 내가 가진 열등감에 어리석은 보상심리까지 알게 됐다. 내가 당하는 줄 알 알면서도 왜 그 이를 감쌌는지 말이다. 사이코패스가 가지는 호감도 전략법도 알게 되었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 모르지만 사이코패스는 심리학에 능통하다는 것이다. 그걸 이용하여, 대상의 작동 기제를 알아놓으면 구미에 맞는 숙주가 되는 거다.

책 표지에는 왠 사내가 뱀을 목에 두르고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서있다. 참으로 건방진 포즈가 아닐 수 없지만, 눈길은 간다. 꽤나 인상적인 표지였다. 사이코패스들은 뱀을 목에 감고서도 목도리라 우기는 요설과 뱀 같은 속내를 감추는 포장술로 쉽게 취업을 한다. 이 부분을 읽고 인사채용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허술할 수도 있는지 놀라웠다. 문제는 이 뱀 허물을 벋고 포장술의 필요성을 못 느낄 때 나타난다. 권력욕과 무책임이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주변 동료들까지 무기력에 빠진다. 관리자층으로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 관리자의 파급 효과는 회사 전체로 가기 때문이다. 관리자층으로 갈수록 성과평가는 애매하고 감시 감찰력은 더 떨어진다. 거기에 급진적인 경영변화와 리더십으로 오인받는 사이코패스의 행동은 전체를 위협한다. 그 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교묘히 전가시킨 후, 최고 관리자까지 자기편으로 만든 후에야 퇴근을 한다. 주변 사람들이 혜안을 가졌다면 다행이겠지만, 없다면 거르는 방법만이라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한다.

책을 다 읽고, 사이코패스 책을 다시 본 이유를 생각해봤다. <진단명 사이코패스>가 소개한 교도소의 미친놈 보다 내 직장의 미친놈이 더 무섭긴 하다. 그러나 이 이유만으론 아직 부족하다. 책을 읽은 이유가 로버트 D.헤어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숙고해서 떠올려 본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다. 사이코패스의 사람을 후리는 그 ‘재주’가 궁금했던 거다. 그 들의 전략적 행동도 나의 부족분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미친놈’ 한마디면 뱉으면 되는 데, 이해하려 드는 내 성격의 문제.

처음 <진단명: 사이코패스>를 읽었을 때는 섬뜩했었는데, 이제 그렇지는 않다. 사이코패스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그 이 말고 사이코패스를 더 만날 수도, 아닌 만날 수도 있지만 그 때는 담담할 수 있기를.

 하지만 당신이 하는 것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사이코패스의 의도는 사악하지만, 당신의 의도는 진정으로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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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9 0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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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9 04: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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