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1월 1일 새벽 3시, 출출하여 집 앞 편의점에 갔다. 깜짝 놀랐다. 꽃 분홍 포장지로 큼지막하게 포장된 빼빼로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 사갈일이 있겠냐?’며 히죽거리는 그 녀석을 보니 심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엔 기운이 빠졌고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이 막역한 친구로, 내 곁을 따라 걸었다. 울적한 기분에 배고픔마저 잊혀 졌더라면 좋았을 걸, 애정 궁핍은 위장 궁핍을 더 불렀다. “속상한 애인보다 속 든든한 너희들이 더 나아!”를 외치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성형수술을 방금 끝낸 듯, 부은 얼굴이 거울 속에서 웃고 있었다. 더 이상의 자기 연민은 그만둬야 했다. 지각하게 생겼으니까.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듯, 상대도 완벽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기대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완벽한 사랑을 말이다. 이러니, 연애도 못하고 로맨스 소설 따위는 속만 부글거려 읽지를 않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그나마 입맛에 맞았다고나 할까.

가장 최근에 읽었던 연애소설이 요시다 슈이치의 <7월 24일거리>였는데 얼마나 반성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책에 연애 못하는 여자의 10가지 이유가 적혀있었는데, 맨 마지막 이유가 이거였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 얼마나 마음을 찌르던지, 연애에도 실수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었다. “이제는 대 놓고 실수하리.”라고 생각던 찰라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기 시작했다. 

배경은 라디오 방송국, 이건이란 PD가 공진솔이라는 작가에게 장난을 건다. 장난질이 귀찮다고 생각하면도 고분고분 받아주는 진솔은 나중에 이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건은 오래 전부터 애리를 좋아했다고 말하고, 뭐가 사랑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제를 시작하는데, 애리와 선우라는 커플이 섞이면서 감정의 파도가 철썩거린다. 감초같은 이필관 옹의 등장, 친구 한가람의 연애 탐방기, 희연의 남자보다 진한 퓰리처상 애정 등이  웃음을 간간히 던진다. 오해와 화해가 있는 해피엔딩 스토리였다. 완벽한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온전한 이해를 가르쳐준 로맨스. 이 가을에 딱 이었다.

“이번엔 댁이 생각해볼 차례예요. 환상이나 기대 없이도, 나 믿고 당신 믿고 또 사랑해 볼 수 있는지. 당신 마음 들여다봐요. 이젠 내가 기다릴게.”
진솔은 가슴이 아파 머뭇거리다 가만히 끄덕였다. 그가 옆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난 오래라도 기다릴 수 있어요. 누구처럼 겨우 두 달 가슴 졸였다가 상처받기 싫어요, 하고 도망가진 않아.”
“그게 누군데요?”
“몰라, 어떤 바보 같은 여자.”
(p.407)


 
ps. 양장본의 표지색이 왜 초콜릿 색깔인거야! 초콜릿 막대 과자가 또 생각나잖아. 그러고 보니, 서평등록도 11월 11일까지로군. (서평단 리뷰임을 밝힙니다.) H, 자네에게 선물하기 위해 또 한 권 샀다네. 이거 읽고 서로 반성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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