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탈을 쓰다 - 웃는 얼굴로 칼 꽂는 사람 대처법
조지 K. 사이먼 2세 지음, 조은경 옮김 / 모멘토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진단명 사이코패스>를 읽은 적이 있다. 죄책감이란,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인간적 상호관계란, 자신의 이익이 있을 때만 있는 거라는 악인들을 알게 되었다. 그야 말로 네가 인간이냐 싶을 만한 인간들이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얼마나 섬뜩했는지 모른다. 책의 저자 로버트 D. 헤어는 여러 사기꾼 및 살인마를 사이코 패스의 예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보다 무서운 건 법망을 교묘히 피해해가는 사이코 패스가 더 많으며, 그 놈들이 꾀나 매력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의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절로 피해자가 된다고 했다. 
 
사기꾼이었던 한 사이코패스는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말했다 “작업할 때는 우선 대상을 평가합니다. 그 사람의 처지나 한계점을 찾고, 필요한 것을 알아내서 그 것을 안겨주는 거죠. 그 다음은 회수 기간입니다. 이자까지 붙여서 쥐어짜는 거죠.” (사이코 패스 p.233)

양심이란 최소한의 제동장치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도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말수 있으며, 그 만큼의 말솜씨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때 떠오른 사람이 말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A였다. 적잖이 놀랐다. 사이코패스는 당신 곁에 있다는 로버트의 말이 섬뜩했다. 그러나 애써 웃었다. 그녀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기엔 해석이 지나치다고 다독였었다. 안타깝게도 A는 직장서 매일 얼굴 보는 사람이다. 내가 피해하고 말자, 그녀들을 그렇게 본다면 내가 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씩 솟아나는 이 울분은 뭐란 말인가!

그렇게 지냈다. A를 의심하는 나를 의심하며. 그런데 <양의 탈을 쓰다>를 보니 확실해진다. 경증의 성격장애자(personality disorder)가 A임을.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조정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를 말하는 거라면, <양의 탈을 쓰다>가 설명하는 조정자는 좀 다르다. 그들은 ‘은밀한 공격자’(covert-aggressive personality)라고 부른다.

그들은 타인의 권리와 필요를 무시하고, 양심이 매우 부실하며,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고 적극 애쓰고, 노골적인 범죄나 드러내놓고 하는 공격행위만 아니라면 거의 어떤 짓이라도 하는데, 이런 행태 때문에 그들을 반사회적 이라고 규정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p.57)

이는 신경증(neurosis)과는 완전 반대에 있는 개념이다. 신경증은 자신의 탐욕이 들킬까봐 불안하여, 그 걸 억제하다가 눈이 머는 증상이다. 그에 반해 은밀한 공격자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남의 눈을 멀게 하는, 오히려 신경증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 들은 수동 공격성 인격장애(passive-aggressive personality disorder)와도 다르고, 자기애에 빠진 이들과도 다르다.

인간 본성에 관한 많은 전통적 견해들은 우리를 조종당하고 이용당하기 쉽게 만든다. 그중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오해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같다는 믿음이다. 이 오해가 일반화된 것은 전통적인 이론들(신경증에 관한 이론)과 그 전제인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신경증적’이라는 관점의 영향력 때문이다. (중략)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오랜 연구에서 확인됐듯이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조차 않는다. 공격적 성격의 사람들은 여타 성격 유형 대부분과도 매우 다르다. (p.164)

성격장애자들의 문제는 통찰과 자각이 충분함에도 자신의 태도와 핵심적인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들에게, 경악을 하는 거다. 직감적으로 당하는 걸 알면서도 당하는 이유를 책에 이렇게 설명한다. 

누구든 적어도 어느 정도는 두려움, 불안, 혹은 심리적 장애 따위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의 직감은 우리가 무자비한 모사꾼을 상대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데 반해, 우리의 머리는 그들이 ‘내면 깊이’에선 정말로 겁을 먹었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자기회의에 싸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를 냉담하고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싫어한다. (p.29)

난 냉담한 사람 싫어한다. 무관심해 보일 때가 있어도 내가 진짜 냉담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A, 내게 "너 되게 냉담하다“라고 정색을 하며 말했었다. 이게 책에서 나온 ‘죄책감 자극하기’와 ‘자신이 피해자인척 하기’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전에는 그녀의 말에 속만 상했었다. A는 왜 그렇게 이야기 했을 까, 내가 A에게 진짜 냉담하게 대한 게 아니냐며 A를 이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책에서 얻은 결론은, 그런 오해 따위는 하지도 말고 행동으로만 평가하란다. 날 ‘냉담하다’고 역설했듯, A에게 조금 냉담해져야 할 것 같다. 쓰고 보니 미안하고 내 스스로가 섬뜩하지만, 그녀가 진짜 은밀한 공격자는 아니었더라도 그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정신간호학에서 배운 기존의 지식과는 조금 달랐지만, 현실엔 더 가까운 책이었다. 홍보만 잘되었더라면 <사이코패스> 못지않은 책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웃는 얼굴에 칼 꽂는 놈들이 주변에 많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ps. 참고로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단지 걱정되는 점은, 양 탈을 쓴 늑대만 구경하려 거든, 읽지 말기를 바란다. 나처럼 구경만 하려다, 주변인을 다시 보기 시작하니까. A를 이렇게 밖에 생각해 줄 수 없다니, 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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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6 08: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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